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소녀상 재설치를 문제 삼으며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시 한번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에 빠져 지금까지 쌓아온 양국 간의 외교적 성과가 무산될지도 모를 일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연내 해결을 강조하며 일본 측과 합의한 '위안부 합의'는 과거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고가 하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과거, 특히 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위안부 문제는 복잡다단하고 첨예한 갈등 수위만큼 짧은 시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위안부 합의처럼 과거를 해결하기 위해 덤볐다가 오히려 논란과 갈등만 키운 양국 간의 협정과 합의들이 있다. 특히 우리는 과거사 문제에서 피해국 입장에서 제대로 된 사과와 받아내지 못한 채 '국제적 현실', '외교적 실리'를 운운하며 상대국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일본과의 담판에서 우리에게 불합리했던 협정과 합의의 쟁점들을 정리했다.
잘못 낀 첫 단추1965 한·일 청구권 협정
한·일 청구권 협정은 1965년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가 맺은 '한·일 기본조약' 내용 중 하나다. '한·일 기본조약'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7개의 조약'과 이에 부속된 4개의 협정 및 25개의 문서를 가리키는데 이 중 하나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줄여 한·일 청구권 협정이라고 부른다.
한·일 청구권 협정를 아우르는 '한일 기본 조약'은 1945년 광복 이후 단절됐던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를 목적으로 한다.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이 조약은 강압식민통치의 피해자 한국과 가해자 일본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전후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청구권 협정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벌인 모든 침략·범법 행위를 '경제협력자금'이란 이름의 돈으로 보상을 받았다. 청구 액수는 '김종필-오히라 회담' 합의를 토대로 '무상 3억달러, 장기 저리의 2억달러, 기타 ·민관 차원의 지원 1억달러'로 타결됐다. 하지만 경제논리에 밀려난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미해결의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으며, 이는 두고두고 양국간의 마찰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사 더보기
● 사과가 전제되지 않았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여전히 우리가 문제 삼는 부분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협정을 체결할 당시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정과 사과없이 청구권 협정을 진행하려 했고, 회담 타결과 경제 자금이 급했던 우리로서는 일본 측에게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일본이 협정을 체결하면서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은 것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과, 청구권 협정의 성격 규정을 우리와 다르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었다고 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아닌 합법적 합병으로 인식한 것은 일본과 미국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도 암묵적으로 드러난다.
우리에게 이 협정은 일제의 36년 식민통치에 대한 불법성 인정과 피해 배상을 받아내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일본에게는 경제협력 목적이 짙은 협정이었다. 이는 '한·일 청구권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라는 공식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36년 일제 식민지 하의 정신적 물질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다고 봐 '청구권 협정'이라 얘기했지만, 일본에서는 식민지 피해에 대한 보상금이 아닌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원조금 또는 독립축하금의 성격으로 양국 간의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 개인 피해자들은 보상받지 못했다
청구권 협정을 통해 우리는 약 8억 달러의 자금을 일본으로부터 받았다. 협정 체결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의 법적 배상 보상을 인정하지 않자,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하여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요구가 무상 자금에 반영되었다. 한국에서 이 금액은 대부분 개인 보상 영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국가 경제 발전 자금으로 쓰였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에는 한국민의 개인재산권,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과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을 피해자 구제와 보상에 할애할 책임이 있지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았다. 개인에 대한 민간의 재산권과 채권을 국가가 대행한 것인데, 대부분 경제개발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개인의 청구권과 재산권이 국익에 종속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법률상으로 일본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아직 살아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또한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위안부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상 논의 대상에서 빠져 이 부분에 대한 법적 보상과 사과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 뿐만 아니라 도의적 책임도 이로서 모두 끝났다고 본다.
日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준1998 한·일 어업 협정
한일 양국은 지금까지 두 번의 어업 협정을 체결했다. 첫번째 어업 협정은 1965년 한·일 기본 조약과 함께 체결된 4개의 협정 중 하나로, 당시 일본에 비해 낙후된 우리 어업 실정과 최신 장비로 원양어업을 하고 있던 일본의 상황을 토대로 맺어졌다. 따라서 이 협정은 대부분 조항에서 일본 측에게 유리했다.
이후 한국의 어업기술이 발전하고 배타적 경제 수역 범위(Exclusive Economic Zone, EEZ)가 기본 12해리에서 200해리로 바뀌면서 어업분쟁이 격화되자 1998년 1월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한다. 그리고 같은 해 양국은 국제 어업 환경에 맞게 어업 협정을 다시 체결했다. 이를 신(新)한일 어업 협정이라고 한다. 늘어난 배타적 경제 수역 범위로 인한 양국의 바다를 어디까지 각자의 영역으로 볼 것이냐가 주요 내용이다. 배타적 경제 수역 설정, 동해 중간 수역 설정, 제주도 남부 수역 설정, 전통적 어업 실적 보장 및 불법조업 단속, 어업공동위원 설치 등을 양국이 합의해 정했다. 그러나 신 어업 협정이 체결될 당시부터 한국 측이 일본 측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 황금 어장이 줄었다
신어업협정에서 첫번째 논란 대상은 동해에 그어진 중간수역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동해는 400해리가 되지 않아 배타적 경제 수역에 따르면 양국이 겹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양국은 이 겹치는 영역을 배타적 경제 수역을 확정하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공동 조업할 수 있는 구역을 설정했다. 이 구역이 바로 중간수역이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동쪽 한계선을 동경 136˚로, 일본은 동경 135˚로 고수하다 결국 135.5˚(135도 30분)로 합의했다. 이 경계선에는 동해 최고의 황금어장으로 꼽히는 '대화퇴(해저면의 돌기로 수심이 얕아 어장이 형성된 곳)'가 있는데 '대화퇴'의 절반을 중간수역에 편입돼 조업이 가능하게 됐지만, 나머지 절반 영역과 북해도 인근 등이 일본측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포함된 곳에서 조업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 독도를 중간 수역에 넣었다
당초 한국측이 136˚로 동쪽 한계선을 주장한 것은 동해안 오징어 황금어장인 '대화퇴' 어장을 확보한다는 실리와 독도를 기점으로 할 경우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동쪽 한계가 136˚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협상을 135.5˚(135도 30분)로 합의하면서 대화퇴어장의 70∼80%를 확보했지만, 결과적으로 독도를 중간 수역에 넣어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잃었다 ▶기사 더보기
배타적 경제 수역의 기점을 울릉도로 설정하고 독도를 한·일 양국의 이른바 '중간수역'에 두는 것에 합의하자, 일본은 중간수역을 '소유가 명확치 않은 잠정수역'으로 규정하면서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2006년 울릉도 기점을 폐기하고 독도 기점을 선언했지만, 결국 우리가 일본 측의 독도 도발에 대한 빌미를 줬다는 보는 시각이 많다. ▶기사 더보기
2001 일본의 정치적 계산에 이용되는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
통화스와프는 외화가 긴급하게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체결하는 협정이다. 두 나라가 필요 시 자국 통화(通貨)를 상대국 통화와 맞교환할 수 있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협정을 맺은 국가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화 등을 빌려올 수 있다. 위기 시 외화(外貨)를 끌어올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2001년 20억달러로 처음 체결된 한·일 통화스와프는 점차 규모를 확대해 2011년에는 70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일본 정부가 점차 규모를 줄였고 2015년 2월 첫 체결 이후 14년 만에 완전히 종료됐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일본 정부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다가 작년 8월 한·일 재무장관 회담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에게 통화스와프 재개를 요청했고, 일본이 받아들여 5개월째 재개 시기와 규모를 놓고 협상을 해왔다. 그러다 작년 12월 부산 총영사관 소녀상 재설치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은 이를 문제 삼으며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을 돌연 선언한 상태다.
● 일본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은 지난 2001년 처음으로 일본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이래,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3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한도를 확대했다. 이 때, 일본은 통화스와프 규모를 확대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외환보유고가 넉넉하고 재정이 튼튼한 일본 입장에서 통화스와프 체결은 경제적 실익이 거의 없는 일이었고, 한국에 도움을 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한중 통화 스와프 한도가 확대된다는 사실을 안 일본은 중국과 같은 규모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중국에게 뺏길 수 없었고,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로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경제보복으로 바로 통화스와프 축소를 단행했다. 그리고 얼마 전 소녀상 철거가 이뤄지지 않자 '12.28 위안부' 협의를 거론하며 협상 중단을 통보해왔다. 양국 통화스와프 축소는 일본에는 해가 되질 않지만 한국에는 신인도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통화스와프 중단 선언이 당장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일본과의 통화스와프에 집착하는 모습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의 체력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인식될 수도 있다. ▶기사 더보기
[日 아소 부총리 "한국에 돈 빌려주면 못받을 수도" 망언]
이제 말도 못 꺼낸다는데…2015 한·일 위안부 합의
한국과 일본 양국이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말한다.
이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사죄·반성의 뜻을 밝힌 부분이다. 또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피해자 지원 계획도 명문화됐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관련, 기시다 외무상은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베 총리는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어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합의문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총리가 직접 하되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고, 대신 정부 차원의 공개적 사과 표명은 외무상이 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기사 더보기
●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명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도의적'이라는 수식어 없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라고 표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아베 총리의 사죄·반성'이란 표현을 쓰며 아베 총리가 2012년 취임 후 본인 명의의 사죄·반성 입장을 표명한 것 역시 최초이다.
그러나 일본은 '책임'을 언급하면서 정작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문제를 누락한 것이다. 이날 기시다 외무상은 '법적 책임'이라는 말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군(軍)의 관여'라고만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국가적·법적 책임이 문제 되는 것이 바로 위안부 강제동원 때문인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며 "일본이 통감한다는 책임이 결국 '도의적'인 차원이란 얘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가 밝힌 '사죄·반성'도 과거 일본 내각의 담화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낸 사죄 서한의 내용과 똑같아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사과가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점 역시 일본이 소극적인 사과로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고 있는 이 문제를 빨리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았다.
● 10억엔 출연,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로 설립되는 재단 예산 10억엔은 일본 정부에서 출연하며 운영은 한국 정부에서 한다. 하지만 이 금액의 명칭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외교부 안팎에선 잠정적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금'이란 표현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단체들은 이날부터 "배상금으로 보기 어렵다"며 반발 움직임을 보였다. 법률적으로 '배상(賠償)'은 불법행위로 인해 생긴 손해에 대해 지불하는 것이고, 보상(補償)은 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으면서 단순히 손실만 야기했을 때 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으로 위안부 재단을 세우기로 한 것은 사실상 '법적 배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물론 일본은 "법적 배상은 아니다"고 했다.
●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또 논란이 된 것은 양국이 "이번 발표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한다"고 한 부분이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은 일본의 입장이 관철된 표현이다.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앞으로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일본이 이 재단에 약속대로 예산을 계속 투입하는 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아베 총리의 사죄·반성 표명 부분과 배치되는 망언 등 '약속 불이행'이 있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 소녀상 적절히 옮겨지는 것으로 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합의가 이뤄진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내용은 한·일 양국이 발표한 합의문에도 포함됐다. 실제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회담 후 일본 기자들과 만나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일본은 한국 정부가 '12·28 합의' 이후에도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자 지난 1월 6일 주한 일본 대사·총영사를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등 보복성 조치에 나섰다. ▶기사 더보기
얼마나 고급 정보길래…2016 한·일 군사정보 보호 협정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은 지난해 11월 23일 한국과 일본이 양국 간 군사정보의 전달·사용·저장·보호 등의 방법에 관해 맺은 협정을 가리킨다. 양국의 2급 이하 군사 비밀의 교환 방법, 교환된 정보의 보호·관리 방법을 규정한 문서로, 이번 협정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이 처음으로 맺은 군사 협정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도 한 차례 추친된 바 있으나 국민 정서 상 큰 반대에 부딪혀 협정 체결 40분 전에 무산됐다. ▶키워드 더보기
이 협정으로 우리가 일본과 주고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정찰위성 5~6기를 비롯해 이지스함 6척, P-3C 및 P-1 해상초계기 77대, E-2C 등 조기경보기 17대, 탐지 거리 1000㎞ 이상인 지상 레이더 4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신형 정찰위성의 해상도는 30㎝급으로, 우리 정찰위성(아리랑 위성)의 55~70㎝급보다 정교한 북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우리가 고위급 탈북자 등을 통해 수집한 인간 정보(휴민트)정보에 관심이 많다. ▶기사 더보기
● 고급 정보 주고 저급 정보 받는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 협정을 맺으면 우리보다 정보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으로부터 대북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 정보가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미국으로부터 받는 것보다 유의미할 수 있는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현재 우리는 대북정보를 미국으로부터 받는다. 합동참모본부는 한미연합사령부가 파악한 북한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받는다. 일본 측이 고급 기술을 통해 얻은 가치 있는 정보를 우리에게 넘길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다.
일본이 관심을 보이는 우리의 고위급 탈북자와 인간정보(일명 휴민트) 등은 일본에서는 운영하기 힘든 영역이다. 일본이 갖기 힘든 정보를 쉽게 내주고, 우리는 미국 측에서도 받을 수 있는 저급 정보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굳이 일본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고 보기도 한다.
●자위대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일본에 한반도 영향력 확대의 빌미를 줄 수 있는 협정이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실제로 아사히 신문에서는 체결 협정 시 "자위대가 한국 거주 일본인의 구출작접 시 필요한 한국군 전개 정보 등을 입수할 수 있다"고 서술하며 일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으로 자위대를 언급했다. 일본은 지난해 3월 안보법제 시행 이후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이 커졌다. 미국은 예산감축(시퀘스터)으로 동북아에서 군사적 부담을 일본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용인하는 빌미를 주는 동시에, 미·일 군사 공조에 하위 체제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정부 소식통은 "한일 GSOMIA는 애당초 미국이 등 떠밀어서 체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우리에게 그 어떤 나라보다 민감한 나라다. 한일 관계 특수성 때문에 다른 외교 관계보다 풀기 힘든 난제들이 곳곳에 쌓여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감정적으로 풀기 보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명확하게 분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아베 총리가 부산 총영사관의 소녀상을 두고 한국이 12.28 합의를 깼다며 기민하고 치밀하게 대응하고 있는 현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소녀상 보복 '열흘 작전'… 아베, 디데이 1월6일 맞춰 칼 갈았다]
참고자료
한일청구권 협정이 남긴 과제들, 정청래, 대한민국국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