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의 해리(36) 왕손과 메건 마클(39) 부부가 사실상 왕실을 떠나 독자적인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이자 찰스 왕세자의 차남인 해리는 2018년 미국인 영화배우 마클과 결혼했다.

8일(현지 시각) 해리 왕손 부부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시니어 왕실 가족'의 일원에서 물러나고 재정적으로 독립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시니어 왕실 가족'이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정점으로 한 직계가족을 의미한다. 영국 언론들은 해리 부부가 가족 간의 관계는 유지하되 왕실의 일원으로서 공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독립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는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해리 윈저(오른쪽) 영국 왕손과 아내 메건 마클이 지난 7일 런던 캐나다 하우스에서 나오고 있다. 해리 왕손 부부는 왕실에서 나와 독자적인 삶을 살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마클과 결혼한 이후 해리 왕손은 형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갈등이 불거졌다. 전통적인 영국 왕실의 며느리상에 가까운 윌리엄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과 미국인·연상·혼혈·이혼녀라는 정체성을 가진 마클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 것이 불화의 씨앗이었다. 미들턴과 마클이 큰소리로 다퉜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해리는 작년 10월 TV에 출연해 "(형 윌리엄과의 불화설은) 전부 과장은 아니며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길 위에 있다"고 말해 불화설을 시인했다.

게다가 할리우드 영화배우였던 마클이 왕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해리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영국 언론과도 마찰을 빚었다. 해리는 13세이던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이후 언론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해리 왕손 부부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중압감을 토로하며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아프리카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왕실로부터 더 이상 금전적 혜택을 누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독자적으로 영리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벌써 해리가 강연 한 번에 50만달러(약 5억8000만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만큼의 강연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해리 부부가 책을 쓰면 큰돈을 만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해리 부부의 성명에서 "영국과 북미에서 균형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대목도 눈에 띈다. 영국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미국·캐나다에서 사는 시간을 늘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독립 선언은 해리 부부가 한 살배기 아들 아치를 데리고 캐나다에서 긴 연말 휴가를 보낸 다음 나왔다.

해리는 '독립 선언'을 하면서 왕실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고 엘리자베스 여왕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해리 왕손의 갑작스러운 발표로 왕실 내부가 큰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한 듯 해리 부부는 인스타그램에 "수개월에 걸쳐 숙고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