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효도 계약' 맺는 풍토 한탄 말고 '不孝방지법' 추진할 때 됐다

조선일보
입력 2016.01.06 03:22

가족 모임에서 자식으로부터 '효도 계약서'를 받는 부모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작년 말 대법원이 효도 계약을 어긴 아들에게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뒤 일어난 현상이다. 이 소송은 '한집에 살며 충실히 봉양한다'는 각서를 받고 살던 집을 아들에게 물려준 70대 아버지가 아들이 약속을 어겼다며 낸 것이었다. 현행 민법으로는 자식에게 조건 없이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기 어렵지만 이 아버지는 '조건부 증여'를 명시한 각서 덕분에 승소할 수 있었다. 이 판결은 '재산을 덜컥 물려줬다가 버림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이 효도 계약서에 눈길을 두게 만들었다. 부모 부양 의무마저 계약으로 이뤄지는 것이 씁쓸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떠오르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세태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미덕이 사라지고 고령화에 따른 노인 빈곤이 겹친 탓이 크다. 게다가 잘못된 민법 체계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법 556조는 증여를 계약한 상태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 행위를 하거나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558조는 '이미 증여를 이행한 때는 취소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이 558조 때문에 그동안 효도 계약서가 없으면 부모가 소송을 내도 불효자로부터 증여 재산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이 조항이 없다면 굳이 효도 계약이라는 각서를 쓰지 않아도 556조에 따라 증여를 취소할 수 있다.

자녀의 부모 부양은 민법상 의무이지만 부양 문제를 놓고 불화를 빚는 가정은 계속 늘고 있다. 부모를 학대하는 사례가 신고된 것만 2014년 577건에 달했다. 효도 계약은 이런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는 될 수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현실에선 효도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여전히 드물다. 그렇다면 현실과 맞지 않는 법을 고치는 게 최선이다. 지금 국회엔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녀로부터 증여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는 '불효자방지법'이 계류돼 있다. 이 법의 핵심도 민법 558조를 없애는 것이다.

효도는 법 이전에 윤리의 영역이다. 법이 왜 부모 자식 간에 개입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재산 다 주고 자식에게 버림받은 부모에게 그건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불효자방지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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