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 개혁의 시동을 걸었으나 구호뿐이고 정작 정부가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재집권에 성공한 캐머런 영국 총리의 개혁 작업은 우리 정부의 개혁에 시사하는 게 적지 않다. 캐머런 정부는 최근 '저임금, 고세금, 고복지'의 영국을 '고임금, 저세금, 저복지' 국가로 바꾸는 국가 개조(改造)를 하겠다며 복지·재정·노동 개혁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영국 의회는 20일 캐머런 총리의 복지 축소안을 승인했다. 1인당 복지 한도를 23% 낮추는 게 골자다. 정부가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복지 수혜층을 일터로 나가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영국 인구의 9%인 600여만명은 전혀 일을 안 하고 복지 혜택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34만 가구는 가족 전체가 평생 한 번도 일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먼저 이 중 30만명을 구직(求職)에 나서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복지 축소는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영국이 복지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먼저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캐머런은 각 부처 예산을 40%씩 줄이는 방안을 오는 9월까지 내라고 했다. 감축안이 확정되면 중앙 공무원의 4분의 1인 10만명이 짐을 싸야 한다. 복지 감축액(120억파운드)보다 부처 예산을 줄인 재정 감축액(130억파운드)이 더 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15일 캐머런 정부는 공공 노조의 파업을 어렵게 하는 노동 개혁안도 공개했다. 노동 개혁은 공공 노조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이 복지 축소란 인기 없는 정책을 들고도 재집권한 이유는 이처럼 정부가 먼저 희생하고 국민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는 2010년 첫 각료회의에서 자신과 장관들 임금을 5% 깎고 5년간 동결하겠다고 했다. 복지로 구멍 난 재정(財政)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공공 부문 근로자 50만명을 줄이고 공기업 임금은 동결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2013년엔 우정사업본부 격인 로열메일을 민영화(民營化)해 20억파운드를 마련하는 등 공기업을 팔아 예산을 채웠다. 집권 1기 5년간 당초 계획을 뛰어넘어 공무원 9만명 등 100만명 가까운 공공 부문 인력을 줄였다. 120억파운드(약 22조원)의 예산이 절감됐다.

그래도 일자리 대란(大亂)은 없었다. 28%였던 법인세율을 20%로 낮추는 등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도 최대한 돈을 풀었다. 그 결과 2010년 실업률이 8%에 육박했지만 이제 5%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작년 성장률은 2.8%로 선진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았다. 올해 영국 성장률은 2.4%로 선진국 평균(2.1%)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캐머런 총리의 개혁은 정권 초기에 개혁 방향을 명확히 알리고 정부와 공공 부문이 희생에 앞장서야 개혁에 대한 국민 지지를 얻고 기득권 집단의 저항을 돌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출발도 늦었고 국민 지지도 크지 않은 우리 4대 개혁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는 영국 사례에서 보듯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어느 정도 처절한 각오를 하고 있느냐만이 의문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설] '국가적 장애물' 비판 듣는 국회가 의원 수 늘리겠다면
[사설] 교통사범 特赦 후 어김없이 늘어나는 교통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