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송에서 사용되는 말의 혼탁상에 대해 방송국 밖의 전문가들보다 방송사 안에서 더 심각하게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본지가 지상파 3사의 아나운서 1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그들은 방송 언어에 낙제점수에 가까운 62.5점을 매겼다. 아나운서들은 내부 심의규정이 버젓이 있고 시청자 항의전화가 계속 빗발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날 '막말 선수'들을 출연시키고 있다며 방송사 경영·편집진의 막말 무신경을 고발했다. 막말 사용이 반복되면 출연을 금지시키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주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상파의 한 시트콤에 대해 '돈 없다고 삥 뜯더니' '아이 씨 쪽팔려' 같은 저속한 표현을 골라내 징계조치를 내렸다. 방송사에 과징금 부과 같은 중징계를 내려도 시청자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른다. 점점 더 험한 말을 쓰는 출연자들을 줄이어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과거엔 특히 청소년들의 막말 풍조를 부추기는 것에 대해 방송 언어가 현실 세태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현실론으로 변명했었다. 하지만 최근 사태는 과징금을 물더라도 막장의 타락한 언어로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게 낫다는 손익계산의 결과다.
국립국어원은 작년 8개월 동안 방송 3사의 저품격 언어를 조사, 각사 1300~2300여건에 이르는 지적을 내놓았다. 시청자들은 비속어·욕설·차별어·인격모독어에 1분에 한 번 이상 노출돼 있다는 통계도 있다. 평일 3~4시간, 일요일 5시간 정도 TV를 본다고 치면 예능프로나 드라마를 탐닉하는 시청자는 일주일에 최소 1300번 이상 오염된 언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셈이다.
요즘 우리 방송 풍토로 보면 TV 시청시간과 폭력·탈선·일탈(逸脫)행동 건수가 비례할 수밖에 없는 연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막말 사태를 빚은 작가·PD 등 제작 책임을 맡은 개개인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비상대책까지 생각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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