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도 겪어봐야 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진영의 실세 중의 실세인 정두언 의원의 말이다. 행정고시를 거쳐 총무처, 서울시청, 정무장관실, 체육부, 국무총리행정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등에서 20년 가까이 공무원을 했던 그는 지금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의 조각(組閣) 작업을 맡고 있다.
그가 자신의 공직 생활을 정리한 이후 2001년에 쓴 책의 제목이 공교롭게도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이다. 어쩌면 7년 뒤 자신이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인선 작업에 참여하는 역할을 예견이나 한 듯하다.
그의 보스에 대한 평가기준을 들어보자. "어느 조직의 보스를 평가할 때 똑똑하고 부지런한 형(型), 똑똑하지 않으나 부지런한 형, 똑똑하고 게으른 형, 똑똑하지도 않고 게으른 형으로 나눈다… 부하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게으르고 똑똑한 보스가 단연 으뜸이며, 부지런하고 똑똑하지 않은 보스가 최악이다."
정 의원은 이런 관점에서 역대 총리를 평가했다. 우선 그는 부지런하고 똑똑한 총리의 유형으로 노재봉, 강영훈, 이회창, 박태준씨를 들었다. 또 자신이 모셨던 18명의 총리 중 가장 부지런했던 총리로는 박태준씨를, 가장 나이스했던 총리로 이회창씨를 들었다. 이회창씨에 대해서는 특히 "총리실 직원들이 가장 신나게 일하도록 해주고, 존재 그 자체로도 힘을 발휘하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고 호평했다. 강영훈 총리도 아주 높이 평가했다.
정 의원은 또 게으르고 똑똑한 유형의 총리로 이홍구, 이수성, 김종필씨를 들었다. 세 총리에 대해서도 "사람 좋은 이홍구" "정치력이 대단했던 이수성" "주변관리가 너무 허술한 게 의외였던 김종필"이라고 평했다.
그는 총리론에 대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촌평도 했다. 첫째, 학자 출신 총리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데는 무능한 경우가 많다. 둘째, 역대 총리들의 사적인 면모를 더듬다 보면 부인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의외로 부정적인 얘기들이 많다. 셋째, 대부분의 총리들이 직속상관인 대통령들보다 자질과 인품 면에서 늘 앞서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총리론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는 그가 과연 이명박 당선자로 하여금 어떤 총리 카드를 뽑아들게 할지 자못 궁금하다.
일단 인수위 주변에서 들려오는 총리 인선을 둘러싼 뒷얘기들은 이 당선자나 정 의원, 모두에게 "정말 인사가 만사(萬事)구나"라는 철칙을 느끼게 했을 법하다.
이 당선자는 특히 총리 인선 과정에서 몇 번의 '산'을 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임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차기 대통령'의 신분, 즉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입장에서 추진하는 일도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고, 안 풀리는 일이 발생하는 점을 겪고 있는 셈이다. 회심의 카드로 구상했던 '박근혜 총리' '심대평 총리' 카드는 당사자들이 노(NO)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또한 진짜 시키고 싶은 재상(宰相) 카드는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이러저러한 허물 때문에" "노무현 정권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죽죽 밀려나는 국면이다.
"좋은 사람은 다른 정권이 다 써먹었고, 사람 고르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아무래도 기준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당선자 측근 그룹에서 들려오는 하소연이다.
더구나 이 당선자의 경우, 국정의 그립을 세게 쥐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실세 총리' '중량급 총리'는 피해야 한다. 새 정부의 상징성에 맞으면서도 '일 잘할 수 있는' 총리감, 말이 그렇지 어디 쉬운 일인가.
지금 이 당선자와 정 의원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