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유겐트, 콤소몰…. 그런 이름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히틀러 유겐트는 나치스의 청년조직이었다. 1922년에 조직되기 시작해서 한창때인 1934년에는 단원 수가 358만명에 이르렀다가 1945년 히틀러의 패전과 함께 해체됐다. 콤소몰은 소련공산당의 청년 전위조직이었다. 1991년 소련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해체됐다.

그러나 나치스나 소련공산당은 몰락했지만 중국공산당은 버젓이 살아있는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청년 전위조직인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은 1920년에 처음 조직된 이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줄여서 '공청단'이라고 부르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은 2004년 말 현재 7188만명의 단원 수를 자랑한다. 작년 10월 중국공산당은 제17차 전국대표대회(全大·전당대회)를 개최했지만, 공청단은 올해 여름 제16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작년은 중국공산당의 해였지만, 올해는 공청단의 해"라는 것이다. 더구나 올 8월8일 저녁 8시 개최 예정인 베이징(北京)올림픽은 젊은이들의 일로, 14세에서 28세까지의 청년들이 단원인 공청단은 바로 자신들의 일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공청단은 자신들이 보이스카우트처럼 신체 단련이나 하고 강변에서 쓰레기 줍기 같은 착한 일이나 하는 조직이 아니라고 말한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02년에 당정군(黨政軍)의 최고 권력을 모두 장악하면서 공청단은 중국공산당 내의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후진타오는 중·고 시절이나 칭화(淸華)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공청단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마흔 살이 되던 1982년 공청단 간쑤(甘肅)성 위원회 서기로 발탁됐다. 후진타오는 마흔두 살이던 1984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맡았다. 이후 후진타오가 권력의 계단을 차례로 오른 것은 바로 공청단의 요직을 맡은 뒤부터이며, 그 배후에서는 당시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오른팔로 당총서기의 권좌에 앉아있던 후야오방(胡耀邦)이 후진타오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후진타오는 후야오방의 신임을 바탕으로 덩샤오핑으로부터 장쩌민의 후계자로 미리 점지당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후진타오는 자신의 그런 출세 경력을 생각했는지 지난해 10월의 중국공산당 17차 전당대회에서 자신과 닮은꼴인 리커창(李克强)과 리위안차오(李源潮) 두 공청단 출신을 중국공산당 권력의 핵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두 사람 모두 베이징(北京)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이라는 화려한 학력 배경까지 가진 데다가 지방 성장(省長)과 당서기를 두루 거쳐, 후진타오의 그런 노력은 중국 사회 내에 "요즘은 투안파이(團派·공청단파)의 세상"이라는 말까지 나돌게 했다.

그러나 막상 당대회 뚜껑을 열어보니 새로운 미래 지도자로는 리커창이 아닌 시진핑(習近平)이 떠올랐다. 리커창이 공청단 출신으로 못사는 허난(河南)성과, 실업률 높고 생산 효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는 랴오닝(遼寧)성 당서기 겸 성장으로 고생하며 정치 학습을 하는 동안, 중국에서 가장 잘 산다는 푸젠(福建), 저장(浙江)성과 상하이(上海)특별시 당서기를 지낸 시진핑이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젊은 핵심으로 지명됨으로써 이른파 투안파이는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입체적이면서도 시간 개념까지 더해서 관찰해야 하는 중국공산당의 미래 권력은 아무래도 공청단 출신의 투안파이에게 넘어갈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중국공산당 당대회가 끝난 3개월쯤 흐른 요즘의 중국 정치의 흐름에 맞는 말이다. 후진타오가 믿는 공청단 출신 리위안차오는 당조직부장에 임명됨으로써 인사권을 장악했고, 산시(陝西)성 당서기 위안춘칭(袁純淸)을 비롯한 많은 투안파이들이 지방과 중앙의 요직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들 투안파이들에게는 '공화국 제1세대'란 별명이 붙어있다. 1949년에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이 길러낸 첫 세대의 인재들이라는 말이다.

공청단 조직은 14세에서 28세의 젊은이들이 있는 조직이면 어디든지 있다. 중·고와 대학에는 물론이다. 예를 들어 베이징대학의 경우 학교 행정조직과 학생회 조직, 그리고 공청단 조직이 학생들을 끌고 간다. 공산주의 청년단 조직의 인재양성기관인 청년정치학원의 한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공청단원은 스스로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 우수하고 학생들 사이에 신망이 높은 학생이라고 인정받는 경우 교수나 다른 공청단 조직원의 추천으로 가입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따라서 공청단원으로 추천받는 경우 거절하거나 고사하는 일은 없으며, 공청단원으로 추천된 사실을 무한한 자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 공청단원들은 또한 공청단 기관지인 중국청년보나 각 지방 청년보를 구독하면서 끊임없이 청년 정치 지도자로서의 의식을 키워가게 된다.

우리는 2차대전을 그린 전쟁영화에서의 히틀러 유겐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오늘의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은 히틀러 유겐트와 같은 전쟁 보조 업무 같은 것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14세에서 28세까지의 젊은이들 가운데서 우수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이나 신체와 정신 단련, 문화 예술에 대한 능력 개발 등의 활동을 한다. 그러다가 28세가 되면 중국공산당원이 되어 중국공산당의 핵심 당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공청단의 강령은 공청단의 성격을 "중국공산당의 조수이자 예비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래의 정치권력"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