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슬론, 여자의 노동, 1912년, 캔버스에 유채, 80.3×65.4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미국 화가 존 슬론(John Sloan·1871 ~1951)이 맨해튼의 첼시 지역에 있던 자기 스튜디오에서 그린 그림이다. 오늘날 고급 갤러리와 세련된 카페가 즐비한 첼시에 산다면 월드스타급 화가겠지만, 100년 전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과 가진 것 없이 유럽에서 갓 이민 온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테너먼트’라는 열악한 공동주택이 들어서 있던 빈민가였다. 아직은 창백한 초봄 햇살에 주렁주렁 매달린 이불과 옷가지는 첫눈에는 평화로운 여느 가정의 일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팔을 뻗으면 닿을 듯 바짝 붙은 건넛집에서, 혼자 간신히 설 수 있는 비좁은 난간에 위태롭게 몸을 내밀고 회색 공기 속에서 광주리 가득 흰 빨래를 내다 너는 여인은 실은 가난과 고된 노동의 풍경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나고 자란 슬론은 일찍부터 빈곤에 익숙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 가장이 되어 가게를 전전하며 틈틈이 책으로 그림을 배워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돈 되는 일이 잡지 삽화, 포스터, 주말판 신문의 숨은그림찾기였는데, 1902년부터 1916년까지 14년간 그린 삽화만 900여 점이라고 하니, 일주일에 한 장꼴로 쉬지 않고 출판한 셈이다. 결혼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슬론은 배경이 비슷한 미술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유화를 시작했다. 화려한 대도시 이면의 이민 노동자 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 슬론과 친구들은 ‘애시캔 화파’라고 불린다. 이들이 그려낸 현실이 말 그대로 재떨이처럼 어둡고 칙칙하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슬론은 이후 사회주의자이자 혁신적인 교육자로 이름을 날렸다. 제자들에게 존경받았던 건, 그의 삶과 그림과 정치적 태도가 서로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