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전세계약 갱신 때 전세대출 (만기 연장) 동의를 안 해줘야겠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임차인이 요구하면 전세를 1회(2년) 연장할 수 있게 하는 '계약 갱신 청구권', 계약 연장 시 전·월세를 5% 이상 못 올리게 하는 '전·월세 상한제' 등을 담은 임대차 3법이 31일부터 시행된다. 집주인이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전세를 내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세대출 연장을 거부하는 '우회로'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집주인이 동의를 안 해주면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못 받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집주인은 새 세입자를 들여 시세대로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일각에서는 '임대차 3법을 무력화하는 수단'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짚어보자.

◇①전세대출 절반 차지하는 주금공 보증, 집주인 동의 필요 없다

은행은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 셋 중 하나의 보증을 끼고 전세대출을 내준다. 이 가운데 가장 큰손은 주금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전세대출 보증 시장에서 약 53%를 차지한다.

주금공 보증은 세입자 신용을 기반으로 해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집주인의 동의가 아예 필요없다. 처음 전세 들어가서 대출 낼 때는 물론, 2년 후 전세 및 대출 계약을 한 차례 연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세금이 올라 대출을 늘릴 때도 집주인 동의가 필요없다.

따라서 세입자가 주금공 보증을 통해 전세대출을 받을 경우, 집주인이 '꼼수'로 세입자를 내쫓는 건 불가능하다.

◇②전세대출금 안 늘리면 집주인 동의 없어도 돼

HUG와 서울보증의 보증을 통해 전세대출을 받을 때는 집주인이 대출 과정에 관여한다. 두 기관은 채권 양도 또는 질권 설정 이후 보증을 서준다. 대출자(세입자)가 돈을 안 갚는 경우, 집주인이 받아둔 전세보증금을 은행이 가져가기 위한 법적 절차다.

처음 전세 들어가서 살 때는 집주인이 전세대출을 위한 질권 설정에 동의 안 해줄 이유가 없다. 그래야 전셋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을 연장할 때는 어떨까. 만약 전세대출금이 그대로라면, 집주인은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 기존 한도만큼 대출받으며 만기만 늘리는 건 '신규 대출'이 아니라 기존 대출의 연장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전세보증금에 대한 질권 설정 절차가 끝나있기 때문에 집주인이 훼방 놓을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셈이다.

◇③전세대출금 증액하면? 집주인 훼방 가능성도

따라서 집주인의 '꼼수'로 문제 생길 수 있는 경우는 ①HUG 또는 서울보증에서 ②대출금을 증액해 만기를 연장하는 경우로 한정된다.

정부는 "HUG 등의 전세대출 보증은 채권양도나 질권설정 방식으로 취급되는데, 이 방식은 보증기관이나 대출기관이 그 사실을 임대인에게 통지하는 것으로 대항요건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보증기관이 집주인에게 '질권 설정하겠다'고 통지하고, 집주인이 그 연락을 받는 순간 법적 효력이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집주인이 질권 설정 등에 대한 통지를 수령하길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한 마디로 연락을 피해다니면 전세대출 연장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은행 등 대출기관은 전세계약의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 경우 "전세계약을 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긴 하다.

다만 이런 사례가 일반화될 거라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필요하면 보증기관의 내부 규정 등을 명확하게 만들어 이런 문제를 방지할 방침"이라고 했다.

◇④집주인 꼼수 쓰면 '5% 증액분'만 세입자 부담

만약 집주인이 전세대출을 가로막겠다는 의사가 강력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기존 대출을 증액 없이 만기만 늘리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임대차 3법에서는 전세보증금을 최대 5%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 부담이 대폭 늘어난다고 보긴 어렵다.

예컨대 4억원을 주고 전세 사는 A씨의 경우, 전세대출금은 최대 3억2000만원(4억원×80%)이다.

2년이 지나면 전세금을 최대 5%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전세금은 4억2000만원이 된다.

만약 집주인이 협조해 대출금을 증액할 경우, 3억3600만원(4억2000만원×80%)까지 대출 가능하다. 본인이 8400만원을 마련하면 된다. 2년 전 대비 400만원만 더 구하면 된다.

반면 집주인이 협조하지 않아 기존 대출금(3억2000만원)을 만기만 연장할 경우, 본인이 마련해야 할 금액이 1억원이 된다. 2년 전 대비 2000만원이 더 드는 것이다. 전세대출금을 증액할 때와 비교하면 1600만을 더 구해야 할 부담이 있다.

물론 이 정도 부담이 적진 않지만, 이사 비용이나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을 부담하며 새로 전셋집을 구할 정도라고 보기도 어렵다.

집주인이 애써 금융기관 연락을 피해가며 전세대출금 증액을 방해해도, 헛수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