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리덩후이(李登輝·사진) 전 대만 총통이 30일(현지 시각) 97세 나이로 별세했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리 전 총통은 이날 오후 타이베이의 루민쭝 병원에서 숨졌다. 그는 올해 2월부터 폐렴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아왔다.
리 전 총통은 장제스(蔣介石)·장징궈(蔣經國) 부자의 세습 통치를 끊고 총통 직선제와 다당제를 도입했다. 대만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별명은 '미스터 민주주의(Mr. Democracy)'. 대만 태생 첫 총통이자, 대만 국민이 직접 뽑은 첫 총통이다.
1923년 대만 신베이(新北)시 경찰관 집안에서 태어난 리 전 총통은 1943년 일본 교토제국대 농업경제과에 들어갔다. 2차 대전 때 일본군 소위로 임관하기도 했다. 훗날 그는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고, 말년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비판받았다.
1949년 국립대만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유학한 리 전 총통은 농업경제 전문가로 일했다. 장징궈 전 총통(당시 행정원장)이 1972년 그를 장관급으로 전격 발탁했다. 이후 타이베이 시장, 부통령 자리에 올랐고, 1988년 1월 장징궈가 사망하자 부통령이던 그가 직무 승계를 통해 7대 대만 총통이 됐다. 이후 시장·총통 직선제를 이뤄냈고, 직선제가 도입된 뒤 처음 치러진 1996년 총통 선거에서 당선됐다.
리 전 총통은 1992년 중국과 대만 간 양안 관계의 기본 틀이 된 '92 합의'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원칙이다. 리 전 총통은 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정계로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