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남자 엉덩이 만진건 괜찮다? 나라 망신시킨 외교부

조선일보
입력 2020.07.30 21:17 | 수정 2020.07.31 10:15

[오늘의 세상] 뉴질랜드선 '동성간 성추행' 민감한데… 한국식으로 대처하다 외교갈등

뉴질랜드 외무부가 30일 자국민을 성추행한 혐의의 한국 외교관에 대한 뉴질랜드 경찰 수사에 한국 정부가 비협조적이라고 밝히며 "실망스럽다"는 뜻을 나타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 성추행 문제를 언급한 지 이틀 만이다. 한국이 외교관의 성범죄 논란과 관련해 우방국에 공개적으로 '실망스럽다'는 불만을 들은 것은 전례가 없다. 우리 외교부가 직원의 비위 의혹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문제가 곪아 터질 때까지 쉬쉬하다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질랜드 외무부는 이날 언론 질의에서 "정부는 한국 정부가 이 사건과 관련한 뉴질랜드 경찰의 앞선 요청에 협조하지 않은 데에 실망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뉴질랜드의 입장은 모든 외교관이 주재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외교관 A씨의 뉴질랜드인 성추행 의혹 일지표
/그래픽=김성규

외신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 외교관 A씨는 2017년 주뉴질랜드 대사관에 근무할 당시 현지 채용한 백인 남성을 3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A씨가 2017년 11월쯤 대사관 사무실 컴퓨터를 고치라고 부르더니 뒤편에서 자기 엉덩이를 꽉 쥐었다(squeeze)고 주장한다. 얼마 뒤 A씨는 대사관이 있는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의 사타구니 부위와 허리 벨트 부분을 움켜쥐었다고 피해자는 현지 경찰에 진술했다. 피해자는 대사관 측에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해 상관인 A씨와 같은 건물에서 계속 근무했고, 그해 12월 다시 한번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A씨는 조사를 받지 않고 이듬해 초 귀임했다.

이후 A씨는 외교부 자체 조사를 거쳐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외교부는 A씨가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툭툭 치는 정도로 접촉했다면서도 "동성(同性) 간 접촉이었기 때문에 성적 의도는 없었다"고 한 해명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그해 초 A씨를 아시아 주요국의 총영사로 임명했다.

외교부가 지난 3년간 비공개했던 이 사건은 지난 4월 뉴질랜드 언론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뉴질랜드 법원이 지난 2월 A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해 집행 협조 요청을 했지만, 한국 외교부가 '외교관의 특권 및 면제'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와 관련한 국내외 언론 지적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외신은 외교부의 대응에 대해 "한국 외교부에 문화적 문제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단지 몇몇 '나쁜 계란(bad eggs·못된 사람들)'의 사례일 뿐일까"라고 지적했다.

급기야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는 지난 25일 심층 보도를 통해 뉴질랜드가 6·25전쟁에 참전할 정도로 우방인데도 한국 정부는 뉴질랜드인의 성범죄 피해 수사에 비협조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흘 뒤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8일 한·뉴질랜드 정상 통화에서 아던 총리가 이번 사건을 언급하고, 문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확인해 처리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진작에 외교부가 해야 할 말을 대통령이 대신한 꼴이었다. 외교부가 거듭된 뉴질랜드 측의 문제 제기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나라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이 이렇게 커진 데는 외교부가 이번 성추행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뉴질랜드는 2005년 동성애 커플에게도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2013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다. 국내법도 성범죄는 성별과 무관한 '사람' 간 행위로 본다. 외교부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뉴질랜드 측에 협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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