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각) 미국이 홍콩에 제공했던 특별 대우를 박탈했다. 중국이 홍콩 내 반(反) 중국 행위를 처벌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의 자치(自治)가 악화됐다는 이유에서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후 23년 만에 '민주주의 홍콩'이 '공산주의 중국'에 흡수됐다고 미국이 공식 선언한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동맹국들에 중국산 5G(5세대 통신) 장비 퇴출을 요구했다. 미국과 중국이 홍콩 문제, 기술, 남중국해 등에서 전방위로 충돌하며 본격적인 신(新)냉전 국면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홍콩 정상화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홍콩은 이제 중국 본토와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을 통해 홍콩을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보고,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 지위를 보장해 왔다.
하지만 이날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 정부 기관들은 앞으로 15일 이내에 관련 규정을 개정해 홍콩에 주던 혜택을 중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입국 시 홍콩 여권 소지자에 대해서는 비자를 면제해 주던 조치가 철회되고, 미국과 홍콩 간 범죄인 인도 협정, 조세 협정 등도 중단·개정될 전망이다. 미·중 무역 갈등 이후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고 있는 보복관세는 이제 홍콩에도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홍콩 자유·자치를 침해하는 중국 관리와 단체,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홍콩자치법)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이달 초 상·하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만약 홍콩자치법에 따라 미국이 중국 대형 은행에 대해 미 달러 거래 제한 등에 나설 경우 하루 3조달러(약 3600조원) 규모로 이뤄지는 중국 대형 은행의 달러 조달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번 백악관 조치에 따라 아시아 물류·금융 허브(중심)로서 홍콩의 역할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수출입, 인력 이동, 사법·조세 체계에 대한 신뢰 등 홍콩 장점을 모두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은 항만과 금융 인프라가 탄탄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바로 글로벌 기업들이 홍콩을 탈출하는 것은 아니다. 홍콩에는 1300개 넘는 미국 기업이 있고, 중국 정부는 "홍콩에 대한 제재는 미국 스스로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해왔다. 하지만 영국 BBC는 "홍콩이나 중국이나 별 차이가 없어진다면, 왜 중국 본토나 싱가포르 등으로 옮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미국인·단체에 대한 제재를 경고했다. 중국 외교부는 15일 오전 성명을 통해 "홍콩보안법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기도는 영원히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며 "중국은 정당한 권익을 지키기 위해 관련된 미국인과 단체에 대한 제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 제재 법안을 발의한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영국이 5G 통신망 구축에서 중국 화웨이 제품을 쓰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14일 환영 성명을 내고 "인도의 지오, 호주의 텔스트라, 한국의 SK와 KT, 일본의 NTT와 같은 깨끗한 통신사들"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반(反) 화웨이 전선 동참을 압박한 것이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같은 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남중국해 일대 중국 국영기업의 굴착이나 측량선·어선의 활동을 강하게 비판하며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러시 도시 박사는 NYT 인터뷰에서 "(미·중) 힘의 격차는 줄어들고 이념적 차이는 확대되고 있다"며 "미·중이 이념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