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에게 나무배트 손잡이로 허벅지 안쪽 부분을 맞았는데 부모님이 그걸 보고 우셨어요."(초등학교 남자 야구 선수) "도복 입고 준비 상태로 있으면 (감독님이) 친구들을 만지고 꿀밤도 때려요."(중학교 남자 유도 선수) "조선놈들은 맞아야 한다는데 그런 게 너무 싫어요."(고등학교 남자 축구 선수)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 11월 발표한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 실태 전수 조사'(6만3211명)에 담긴 증언들이다. 체육계 폭력은 대학, 성인팀뿐만 아니라 초·중·고 전반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폭력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기르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기는 선수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미워서 맞는 것이 아니니깐 괜찮아요. 운동하면서 맞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한 초등학교 남자 배구 선수의 말처럼 폭력 피해자 중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답한 비율이 38.7%에 달했다.
◇폭력 되풀이하는 '절대 권력'
국내 체육계 지도자들은 선수의 미래를 결정하는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학교, 성인팀을 거치며 폭력을 몸에 길들인 지도자들은 이 권력과 결합하면서 "내가 운동할 땐 더 많이 맞았다"며 선수들에게 다시 폭력을 휘두른다. 성인 실업팀 선수들은 인권위 조사에서 "지도자들이 '이만큼 지원해주는데 이것도 못 하면 패배자다' 등의 식으로 말하며 수치심을 준다" 고 증언했다. 주종미 호서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선수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선수 몸과 인격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일부 지도자의 생각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2년 전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가 30여년간 여자 선수를 추행·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체조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지도자가 재량권을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종목이었기 때문"이라며 "국내 스포츠 환경은 미국 체조보다 지도자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위 발생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성적지상주의 만든 인권사각지대
작년 5월 전북 익산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초·중 학생 선수 1만2000여명 참가)에서 지도자들은 "이 XX, 똑바로 안 뛰어!" "시합하기 싫으면 기권해!"라며 곳곳에서 고성을 지르고 화를 냈다. 쉬는 시간엔 위축된 학생 선수에게 다가가 "지금 장난하느냐? 왜 시킨 대로 안 하느냐"며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는 지도자도 있었다. 패배한 선수를 데리고 나오며 "그걸 경기라고 했느냐"며 손바닥으로 선수 뒷목을 치기도 했다. 인권위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은 현장 조사 결과 "과열 경쟁이 어린 학생 선수를 울리고 있다. 직접적인 폭행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고함과 욕설, 폭언이 아동학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국내 운동선수들은 대개 초등학교 3~4학년 때 운동을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무한경쟁에 노출된다. 그리고 이런 환경은 "메달만 따면 된다"는 성적지상주의로 이어진다. 한 실업팀 선수는 인권위 조사에서 "실업팀 감독 입장에선 선수 육성보다 작은 대회라도 우승해 자신의 실적을 쌓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얻는 것이 많다"고 했다. 다른 선수는 "지면 선수 탓을 한다"며 "그런 게 심해지면 지도자로선 하면 안 되는 행동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어릴 때부터 합숙 훈련을 하면서 생기는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폭력이 되풀이된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지도자 입장에선 어떻게든 성적을 내야 이듬해 소속 기관 등을 상대로 연봉 협상도 할 수 있다 보니 선수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