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류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마련한 '주류 규제 개선 방안'이 이달부터 시행됐다. '배달 주문 때 술값은 총 주문액의 절반 이하만 허용', '맥주·탁주의 납세증명표지 조건 완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외식·주류 업계도 제도에 적응하기 위한 변신에 나섰다. 일부 현장에서는 홍보 부족으로 혼란도 벌어지고 있다.

배달 기준 맞추려 '미니 와인' 등장

서울 반포동의 한 치즈·와인 전문점은 최근 배달 와인 메뉴를 전면 개편했다. 이 가게는 안주용 치즈를 배달 판매하면서, 와인도 함께 팔았다. 주 메뉴는 2만원대 모듬 치즈. 고객들은 이 메뉴를 주문하면서 1병에 3만~5만원 하는 기본 용량(750mL) 와인을 1~2병 주문해 왔다. 지난달까지는 주류만 단독으로 배달 주문하는 것이 금지됐을 뿐, 음식과 함께 주문하면 주류 가격과 양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술값이 음식 값보다 비싸면 안 된다. 이 가게는 결국 와인 값을 낮추기 위해 기본 와인 상품을 전부 없앴고, 절반 크기인 375mL짜리 미니 와인(9000~1만2000원)만 남겨 뒀다. 와인숍 관계자는 "음식은 간단한 안주뿐이니, 법을 지키려면 '미니 와인'이나 값싼 와인만 배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혼술족이나 '야외 와인 소풍'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음식과 고급 술을 함께 배달 판매하는 곳이 크게 늘었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여의도공원으로 안주·와인을 함께 배달해주는 음식점만 100여곳에 달한다. 서울 신사동의 한 와인 배달 식당 관계자는 "새 규제가 술 용량이 아닌 가격을 기준으로 잡다 보니, 고급 와인을 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배달 와인이 저가 상품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규모 양조장은 '병마개 제조' 등 비용 절감

새 규제 개선으로 이익을 보는 곳도 있다. 소규모 양조업체가 대표적이다. 지난 3일 서울 성수동의 한 수제맥주 업체 창고에는 '납세 병마개' 수십만 개가 쌓여 있었다. 수제 맥주 업체들은 그동안 납세 증명 표지가 인쇄된 병마개를 맥주 종류·규격에 따라 개별적으로 제작해 왔다. 납세 병마개(금속)는 삼화왕관·세왕금속공업 두 곳이 수십년째 전담 생산하고 있는데, 최소 발주 수량(MOQ)이 5만개다. 30종의 수제 맥주를 유통하려면 병마개만 150만개를 찍어야 하는 것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소규모 양조업체들은 납세 병마개를 불필요하게 과다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국세청은 이달부터 수제 맥주·막걸리 업체의 납세 증명 표지에 대해 상표·규격별 구분 없이, 제조자명만 표기하면 쓸 수 있도록 했다. 서울 강남의 한 수제 맥주 업체 대표는 "납세 병마개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제조사가 2곳뿐이라 병마개를 제때 공급받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신제품 출시에 필요한 서류 작업 기간이 45일에서 15일로 단축됐다. 서울 마포구의 한 탁주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신제품을 내려면 최소 1분기(3개월) 전부터 승인·감정 절차를 밟아야 해서 트렌드 대응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달 현장에선 혼선도

새 규정이 배달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오후 배달 전문 앱 배달의민족을 통해 서울 중구의 한 치킨집에서 1만8000원짜리 치킨 1마리와 병(1000mL)당 7000원인 생맥주 3병을 주문했다. 주문 총액은 3만9000원으로, 술값(2만1000원)이 음식 값보다 비쌌다. 배달 앱 결제는 평소처럼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됐다. 새 규정 위반이다. 치킨집 주인은 "온종일 닭 튀기며 생계가 바빴던 터라, 법이 바뀌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했다. 배달 전문 앱은 부랴부랴 결제 시스템을 고치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이용 업주들에게 "7일부터 소비자가 음식 값을 넘어서는 주류를 주문할 수 없도록 애플리케이션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