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주식형 펀드)에게 사약을 내린 것이다."

정부가 지난 25일 주식 직접투자자와 펀드 투자자를 차별하는 내용의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자 금융투자업계가 '국내 주식형 펀드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식 직접투자로 번 돈은 2000만원까지 세금을 물리지 않는 반면, 주식형 펀드 수익은 소액이라도 모두 세금을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모 펀드' 활성화를 추진해 온 기존 정부 방침과도 상반되는 조치여서 "시장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식 직접투자는 세금 적은데, 펀드 투자는 세금 폭탄

이번 정부안의 최대 피해자는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자들이 될 전망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자는 원래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 주식 배당금이나 펀드의 일부를 차지하는 채권 등에서 나오는 이자 등에 대해서만 15.4%의 배당·이자소득세를 냈을 뿐이다. 하지만 주식형 펀드에서 배당금이나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기 때문에 세금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국내 주식형을 포함해 모든 펀드 상품은 전체 수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단돈 1만원을 벌었어도 2000원의 세금을 내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주식 직접투자는 과세 기준이 훨씬 느슨하다. 정부는 2023년부터 주식 매매로 번 돈에 대해 과세하기로 했는데, 연간 2000만원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예컨대 삼성전자에 직접투자해서 2000만원을 벌면 비과세지만,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해 2000만원을 벌면 20%인 4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은 "정부 세제 개편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투자자는 세금 때문에라도 개별 주식에 직접투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 사망 선고 내린 셈"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로 가뜩이나 쪼그라들고 있는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판매 잔액은 22조4796억원으로 지난 2015년 말(40조8011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형 펀드 시장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세금까지 차별받게 됐다. 정부가 펀드 시장에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 대한 차별적 과세로 인해 해외 펀드로의 '머니 무브' 현상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국내 주식형이 해외 주식형보다 세금 면에서 유리했지만, 이번 개편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차이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해외 주식 직구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펀드마저도 해외 주식형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펀드 과세가 시작되기 직전인 내년 말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대규모 ‘환매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업계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공모 펀드 활성화' 외쳐놓고… 모순된 정책 내놔

이번 세제 개편안은 ‘공모 펀드 활성화’라는 정부의 기존 방침과 상충된다. 정부는 지난 수년간 서민들의 안정적인 자산 증식을 돕고, 부동산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공모 펀드를 다양화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펴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도 “국민의 다양한 투자 수요를 충족할 여건을 마련하겠다”며 공모 펀드 활성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번 세제 개편안으로 전체 공모 펀드의 5분의 1 가까이 차지하는 국내 주식형 펀드가 고사(枯死)할 위기에 빠지게 됐다. 최근 개인 투자자에게 각광받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역시 펀드와 마찬가지로 과세 대상이 돼서 결정타를 맞게 됐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개편안은 간접투자를 장려해온 정부의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펀드 투자에도 주식 직접투자와 같은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세제 개편안은 확정된 안이 아니다. 앞으로 공청회 등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7월 말 세법 개정안에 합리적인 방안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