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 내 반(反)정부 인사를 감시·처벌하기 위해 추진해온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윤곽을 드러냈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 '국가안전공서(國家安全公署·공서는 기관이라는 뜻)'라는 보안 기관을 설립하고, 홍콩 내 범죄 활동을 직접 수사·처벌하는 길도 열어놨다. 홍콩 야권에서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상무위원회는 20일 홍콩보안법안에 대한 1차 심의를 마쳤다. 전인대 상무위는 이달 28~30일에도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 회의가 통상 두 달에 한 번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6월 안에 홍콩보안법 제정을 마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0일 공개한 홍콩보안법 주요 내용에 따르면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외국 세력과 결탁한 국가 안전 위협 범죄 등 4가지 범죄를 예방·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법 관할권에 대해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홍콩 정부가 행사한다"고 했다. 다만 "특정한 상황, 국가 안전을 해치는 극소수 범죄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 기관인) 홍콩 주재 국가안전공서와 관련 기관이 관할권을 행사한다"고 명시했다.
중국은 신설되는 국가안전공서를 통해 홍콩 내 안보 문제에 개입하게 된다. '중국정부 홍콩연락사무실'(총괄),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군사), '외교부 홍콩 사무소'(외교)에 이어 중국이 홍콩에 설치하는 4번째 기관이다. 홍콩보안법에 따르면 국가안전공서는 "홍콩 내 국가 안전 관련 상황을 분석하고 관련 사무를 감독·지도"하게 된다. 중국은 이와 별개로 '국가안전 고문(보좌관)'도 홍콩에 파견한다. 홍콩 정부가 신설하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사건을 관할하는 재판부는 홍콩 행정장관이 전·현직 법관 가운데 지명하도록 했다.
이런 내용이 공개되자 홍콩 야권은 "중국 파견 관리들이 홍콩 정부의 업무를 좌지우지하는 '태상황(太上皇)'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21일 보도했다. 국가 안보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과 함께 9월 홍콩 입법회(국회) 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잣대로 야권 후보를 탈락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친중계인 홍콩 성도일보는 "통제가 안 될 때만 중앙 정부가 나선다는 것"이라며 "일국양제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했다.
홍콩보안법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미국·영국 등의 반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1984년 중국이 영국과 체결한 '중·영 공동성명'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콩 반환(1997년)을 앞두고 체결된 성명에서 중국은 홍콩에 대해 '고도의 자치권, 입법권, 독립된 사법권을 누린다'고 약속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중·영 공동성명은 중국 일방의 정책 선언이지 영국에 대한 약속이 아니다"라며 "소위 국제의무 위반이라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