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잠은 천대받는다.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는 표어를 학원 버스에 붙이고 다닐 지경이다. 그러나 태어나서 청소년기까지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문제는 어른에 비해 심각하다. 소아가 잠이 부족하면 면역력 저하로 감염 위험이 늘고, 주의력 저하로 사고 위험도 늘어난다. 기억 능력이 줄어 학습 효율도 떨어진다. 짜증도 더 많이 낸다.
잠이 부족하면 키도 충분히 크지 않는다. 성장기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뇌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 신경 연결 부위인 '시냅스'가 손상된다는 연구도 여럿 있다. 뇌는 잠자는 동안 깨어 있을 때 활동에 대비해 불필요한 시냅스를 정리하고 필요한 회로를 준비한다. 잠이 부족하면 제대로 쉬지 못해 깨어났을 때 뇌 활동이 위축된다.
◇영아 때 수면 습관 들여야
건강과 행복,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수면 습관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태어나서 12개월까지는 14~15시간을 자야 한다. 만 3세까지는 12~14시간, 만 3~6세는 11~13시간의 수면 시간이 필요하다. 초등학생은 평균 11시간, 최소 10시간은 자야 한다.
시기별로 충분하고 규칙적인 수면을 위해 부모가 신경 써야 할 포인트는 조금씩 다르다. 12개월까지 영아는 잠이 하루의 절반 이상인 14~15시간을 잠으로 보내야 한다. 부모와 애착 관계가 잘 형성돼 있으면 수면 문제가 적다. 애착 형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또 잠을 잘 자게 하려면 이때부터 규칙적으로 자는 시간을 정해주고, 잠들기 전 부드러운 말씨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등 '루틴'을 만들어 두면 좋다.
12개월부터 만 3세가 될 때까지는 하루 12~14시간쯤 자야 한다. 그런데 이때는 '미운 두 살' 이라고 부르는 시기로, 아이들이 자율성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불안도 커진다.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싫다고 저항하거나, 자다가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힘들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규칙적이고 일관된 잠자리 루틴을 확립해야 한다. 분리 불안을 줄여주기 위해 평소 좋아하는 동물 인형이나 부드러운 자기만의 담요와 함께 잠자리에 들도록 한다.
◇초등학생은 최소 10시간은 자야
만 3~6세는 11~13시간쯤 잠을 자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 시기 아이의 상상력은 날개를 펼친다. 어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악몽을 꿀 수도 있다. 밤에 오줌을 싸거나 몽유병과 야경증(자다가 겁에 질려 갑자기 깨어나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공포물 등 자극적인 책이나 영상은 피한다. 이때부턴 TV, 컴퓨터 등을 자는 방에서 치워 잠들기 전 불필요한 자극을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10~11시간 자야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수면 시간은 이때부터 부족해지는 사례가 많다. 학교 외에 학원 등을 다니면서 숙제가 급격하게 많아지고, TV·인터넷·게임 등에 몰입하면서 잠을 줄여 노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수면 부족은 키와 같은 성장 발달, 뇌 발달, 정서 조절, 주의력, 기억력과 같은 학습 능력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일정해야 한다. 잠들기 전 복식호흡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카페인이 많은 콜라 등 청량음료를 마시면 안 된다.
수면은 단지 휴식과 게으름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뇌는 신경망의 연결과 분화가 일어난다. 쉽게 말하면 '잘 자야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다. 잊지 말자. 잠은 아이들의 지적 능력과 정서적 행복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