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10일 대북 전단·페트병을 살포한 탈북 단체 2곳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기존의 법 해석을 자의적으로 바꾸고, 이를 무리하게 소급 적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이 화를 낼 때마다 대한민국의 법 해석이 달라져야 하느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교역 개념인 ‘반출’을 전단에 적용
통일부 당국자 A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발 방침을 정한 이유에 대해 “대북 전단이 미승인 반출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북 반출 물품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남북교류협력법 13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반출·반입’을 ‘매매·교환·임대차·증여·사용 등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 간 물품 이동’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반출·반입 승인신청서’에는 무역업 고유번호, HSK번호, 대금결제방법, 원산지 등을 기입하게 돼 있다. 불특정 다수의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기 위한 전단을 막기 위해 남북 교역에 적용되는 개념을 무리하게 끌어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대북 전단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사안인데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한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
◇교류협력법 적용하기 어렵다더니
대북 전단 살포는 10년이 넘은 이슈다. 정부는 최근까지도 대북 전단을 반출 승인이 필요한 품목으로 보지 않았다. 전단 살포를 맹비난한 ‘김여정 담화’가 나온 지난 4일 통일부 당국자 B씨는 기자들과 만나 “기존 법률들이 전단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보니 기존 법률을 적용하는 데 여러가지 한계가 있다”며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전단을 규제하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 A씨는 “사정 변경이 있었다”며 그 사례로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간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한 4·27 판문점 선언(2018년), 경우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2016년), 대북 살포 물품이 다양해진 점 등을 거론했다. 며칠 사이 법 유권해석을 바꾸면서 2~4년 전 일어난 일들을 근거로 든 것이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법이 개정되지도 않았는데 해석을 바꾸면 법문의 취지를 벗어난 무리한 해석이 된다”고 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과거엔 문제 삼지 않다가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법 적용의 일관성, 법의 안정성을 해칠 뿐 아니라 행정권의 과잉 행사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무리한 소급 적용’ 논란도 제기됐다. 과거의 일을 처벌하기 위해 뒤늦게 법 해석을 바꿨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고발 방침을 밝힌 큰샘의 박정오 대표는 “5년 넘게 페트병에 쌀을 담아 보냈고, 지난달 보낼 때도 통일부에서 ‘미승인 반출품이니 승인 신청을 하라’는 식의 안내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 C씨는 “없던 법을 새로 만들어 (과거의 사건에) 적용하는 게 소급 적용”이라며 “법 해석만 바꾼 것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 등은 통일부의 이번 고발로 유죄가 확정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법당국에서 강력 처벌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도 넘은 ‘北 심기경호’ 논란
북한이 ‘역정’을 낼 때마다 정부가 ‘심기 경호’하듯 조치를 내놓는 듯한 모습도 문제로 지적된다. 앞서 통일부는 김여정이 대북 전단을 트집 잡아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4시간 반 만에 긴급 브리핑을 열어 ‘대북전단살포금지법’(가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고발 방침도 예정에 없던 긴급 현안 브리핑을 통해 발표했다. 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끊어버린 지 하루 만이었다.
탈북동지회 서재평 사무국장은 “김여정이 법을 만들라고 하니 법을 제정하고 우리 국민인 탈북민을 고발까지 하는 것은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라고 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전단 살포 저지에) 남북교류협력법을 내세운 것은 그럴싸한 포장이고 실상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전검열의 제도화”라며 “사전검열을 일상화·제도화하는 방식의 대북 전단 규제 시도는 명백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청소년성매매까지 예로 든 통일부
통일부는 이날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추가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성매매를 예로 들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 A씨는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기존의) 성매매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관련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에 청소년 관련 특화된 법을 제정했다”며 “같은 맥락에서 이 문제(전단 살포)에 대해 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입장을 갖고 접근하려면 목적에 맞게 처벌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현행법으로는 전단 살포를 막기 어려워 관련 입법을 추진한다’고 했던 통일부가 이날 현행법(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해 전단 살포 단체들에 대한 고발 방침을 밝힌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같이 해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