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주시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약속을 못 지키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치는 지난 2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오는 2023년 46%까지 높아질 경우 국가 신용 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제러미 주크 피치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 애널리스트는 최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 위기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전례 없는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상당한 규모의 재정 부양책을 쓰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전부터 이미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써왔으며, 우리는 정부 지출 확대가 재정 여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재정 건전성을 잘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해왔다"며 "그러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신용등급에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정 지출의 효율성도 강조했다. 그는 "국가 신용등급 관점에서 채무비율은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며 "국가가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중장기적으로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데 재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도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올해 벌써 세 차례에 걸쳐 60조원 규모의 추경 예산이 편성되면서 우리나라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38.1%에서 올해 43.5%로 급등할 전망이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정부 예상보다 낮을 경우에는 국가채무 비율이 46.5%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피치가 경고한 46%에 단숨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크 애널리스트는 "국가채무 비율에 대해 정해진 기준(threshold)은 없다"면서도 "한국의 중기 재정관리계획이 핵심 고려 사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예상으로는 2021년 말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40%대 후반에 이를 것"이라며 "코로나 쇼크 진행 상황에 따라 예상보다 재정지출이 더 늘거나 세수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