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우리 집 냉장고 하나는 '막걸리 냉장고'. 부유물을 가라앉혀 윗부분만 반주로 즐긴다. 딸이 그 맛을 안 건 지난해부터다. 막걸리는 맥주처럼 날카롭지도, 와인처럼 부담스럽지도, 위스키처럼 위압적이지도 않았다. 집밥은 대부분 한식이니 마리아주(mariage;음식과의 결합)도 좋았다. 젊은 층도 최근 막걸리에 푹 빠졌다. '백곰막걸리'는 요즘 강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술집 중 하나. 막걸리를 잔술로 파는 식당도 많아졌다. '막걸리계 돔 페리뇽'이라는 1만원 넘는 샴페인 막걸리도 등장했다. 막걸리 전성시대다.

◇막걸리는 화이트 와인잔에?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막걸리엔 관습도, 속설도, 편견도 많다. 먼저, 잔. 우리는 늘 막걸리를 밥그릇 잔에 마신다. 그러나 최근 "막걸리는 화이트 와인잔에 마셔야 맛있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쓴 책 '푸드로드'에는 "일본 오사카 한식당에서 막걸리 잔을 맥주잔으로 바꿨더니 매출이 증가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막걸리를 와인잔에 따라 마시면 달콤함과 새콤함, 탄산감이 증폭된다.

지난 6일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에서 조선호텔 와인소믈리에 출신인 홍재경 대표와 막걸리를 대접잔, 와인잔, 소주잔에 따라 마셔 비교해봤다. 잔이 작고 깊을수록 단맛과 새콤한 맛, 탄산이 더 잘 느껴졌다. 홍 대표는 "단맛과 새콤함, 탄산 등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맛이다 보니 와인잔에 마실 때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취향에 맞춰 출시된 것이 샴페인 막걸리 복순도가와 이화백주다. 맵고 짠 음식과 잘 어울린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는 "한식이 가진 매운맛과 젓갈향 때문에 와인과 매치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했는데 막걸리는 반대다. 특히 매운 떡볶이나 볶음면을 먹을 때 입안을 진정시켜준다. 매진 열풍의 '영탁막걸리', '디오케이 막걸리'도 상큼한 맛. 디오케이 막걸리는 맥주 같은 청량감이 강해 피자와도 잘 어울린다.

막걸리 주점에서는 과일 주스를 넣은 '막걸리 칵테일'도 판다. 강남역 부근의 막걸리 주점 '취하당'에서는 전통 쌀막걸리에 솜사탕을 얹은 막걸리, 흑당 버블, 달고나 등을 넣은 막걸리를 고안해냈다.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에선 막걸리에 복분자와 와인을 넣어 마치 붉은 꽃이 핀 듯한 막걸리 칵테일이 인기다.

(왼쪽부터)'취하당'의 솜사탕 막걸리, 양식과 즐기는 '느린마을 막걸리', '기다림막걸리'의 막걸리 빙수.

인스타그램엔 막걸리 꿀주, 막걸리 슬러시도 등장했다. 막걸리 500㎖, 우유 500㎖를 넣고 꿀 두 스푼, 설탕 한 스푼을 넣은 뒤 거품기로 저으면 막걸리 꿀주다. 막걸리 슬러시는 말 그대로 막걸리를 얼린 것이다.

◇막걸리, 꿀 타 먹고, 얼려 먹고

막걸리 윗부분만 먹는 사람들은 "숙취가 덜해서"라고 말한다. 반만 맞는다. 아스파탐 등 인공 감미료가 많이 들어간 막걸리는 감미료가 물에 녹지 않고 가라앉기 때문에 윗부분만 먹는 것이 좋다.

최근엔 인공 화합물을 넣지 않은 막걸리도 많이 나왔다. 해창막걸리, 포천담은막걸리, 느린마을막걸리, 나루생막걸리, 국순당 옛날 막걸리, 송명섭 막걸리 등. 이들은 오랜 시간 세워두면 노란 진액이 남는다. 맛은 대부분 걸쭉하고 진하며 탄산도 미세하다. 가장 걸쭉한 해창 막걸리는 홍어나 떡갈비 등 강한 맛에 어울린다. 막걸리계 평양냉면이라고 불리는 송명섭 막걸리는 전, 무침 등과 잘 어울린다. 이현주 전통주 소믈리에는 책 '한잔 술, 한국의 맛'에서 "느린마을 막걸리는 화이트 와인잔에 따라, 콤콤하게 삭은 2년 된 묵은지를 물에 씻어 꼭 짠 뒤 나박하게 썰어 접시에 담고 스모크치즈를 썰어 안주 삼아 먹으면 맛있다"고 썼다.

막걸리는 외국인들도 좋아한다. 할리우드 영화 '메이즈 러너'의 배우들은 지평 막걸리를 먹으며 서울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고독한 미식가'의 마쓰시게 유타카씨도 '코리안 우유'라며 열광한다. 수제 막걸리 키트도 나왔다. 인터넷에서 1만~5만원 선에서 판매한다. 코로나 사태가 겹치며 집에서 수제 막걸리 만들기가 유행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