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동에 사는 장재원(47)씨 부부와 두 남매(18·19세, 고2·3)는 그동안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많아야 주 1회 정도였다. 그래도 주변으로부터 "가정적인 아버지" "고 2·3 애들이 부모와 같이 밥을 먹어주는 게 대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아이는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합산 총 7개의 학원을 다니느라 부모보다 더 바빴다. 아이들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해 곧바로 씻고 각자의 방에 틀어박힌 뒤 잠들었다. 한의사인 장씨도 동료나 친구들과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상황은 올해 2월 급변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다. 아이들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고, 장씨 저녁 약속도 거의 없었다. 매일 저녁 가족이 식탁에서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했다. 아내 양윤주(46)씨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양씨는 "처음에는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게 힘에 부쳤고, 가족들도 밥상에서 각자 핸드폰만 만지며 데면데면했다"며 "그런데 매일 아침·저녁을 함께 먹다 보니 애들이 서서히 학업 고민, 교우 관계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3개월 이상 지속 중인 코로나 사태로 뜻밖의 변화를 겪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가족의 회복'이다. 학교·학원을 가지 않는 자녀와 저녁 약속·회식을 줄인 부모가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커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2010년부터 중국,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김하영(26)씨는 지난 4월 귀국했다. 북미 지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캐나다의 비자 허용 국가가 점차 줄어드는 등 취업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살 터울인 언니는 2009년부터 중국, 영국에서 유학하다가 지난해 한국에서 직장을 잡았다. 10년 만에 네 식구가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간은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은 1년에 한 번도 쉽지 않았다.
요즘 김씨 가족은 매일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눈다. 김씨는 "지난 어버이날(8일)에 부모님께 꽃다발과 카드를 선물했는데 돌이켜보니 10년 만에 챙긴 어버이날이더라"며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족을 상봉시켰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큰 위험을 이겨내면서 "가족의 애틋함을 더욱 크게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인 정우성(42)씨는 지난해까지 해외 학회 참여 등으로 인해 1년에 12~13회 해외 출장을 다녔고, 야근도 잦았다. 자연히 육아는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정씨는 확진자의 직접 접촉자로 분류돼 2주간 안방에서 자가 격리 생활을 했다.
정씨는 "2주간 거실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대화하는 소리를 방 안에서 듣다 보니 아이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보드게임을 좋아하는지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정씨는 "안아주고 싶은데 안아줄 수 없고, 애틋한 마음만 커져서 보드게임, 책 같은 것을 배달시켜 깜짝 선물을 했다"고 말했다. 2주간 격리를 끝낸 정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자녀들과 함께 리틀 야구클럽을 만들었다. 자가 격리 기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다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정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족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말했다.
감염병 위기 속에 가족의 결속은 단단해지는 것일까. 통계에서도 '가족의 회복'을 엿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이혼과 가정 폭력 사건이 크게 줄었다. 지난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이혼 건수는 7298건. 전년 동기(9071건) 대비 19.5% 감소했다. 2008년 이후 11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여성의 전화'에 접수된 가정 폭력 상담도 4월 1만4667건으로 전년 동기(1만8915건) 대비 22% 줄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는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의 주된 감정이었다면, 점차 새로운 상황에 익숙해진 이들이 '가족의 유대감'이라는 새로운 측면을 보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편부모 가정인 경우,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감도 없는 현 상황이 오히려 가정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가정의 회복'이 양극화로 흐를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