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기 엠아이디자인 대표

20여년간 산업디자인의 한길을 판 1세대 산업디자인 전문기업 엠아이디자인(MI디자인)이 이달 초 39만원짜리 선풍기를 내놨다. 최고가(最高價) 선풍기다. 디자인 업체가 왜 선풍기를 만들었을까. 3만~10만원 하는 다른 선풍기와 경쟁이 될까.

“진짜 좋은 바람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그 최고의 바람을 중국이 아닌, 한국 경기도에 있는 한 공장에서 만듭니다. 실패요? 지금 도전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까 봐, 직진입니다.”

19일 경기도 분당의 엠아이디자인 사옥에서 만난 문준기(60) 대표는 “바람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공기역학 특허 2개를 따고, 이 기술로 자연의 바람을 만들었다”며 “딱 1만5000대 다 팔면 올해 장사는 끝낼 계획”이라고 했다. 문 대표는 1997년 회사를 창업해 삼성전자·LG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중견기업 200여 곳의 제품 디자인 컨설팅을 했다. 이 공로로 대통령 포상도 받았다. 디자인 올림픽으로 불리는 독일 IF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차례 본상을 받았고 2014년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선풍기

문 대표는 “6~7년 전 하이마트에 선풍기를 사러 갔다가 평생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국산 브랜드는 저가 제품 일색이었고 그나마도 모두 만든 곳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소기업의 제품 디자인을 도와, 한국 중기의 해외 수출에 보탬을 준다는 믿음이 컸고, 그 공으로 산업포장도 받았다”며 “정작 국내 소형 가전 시장에선 한국 중기 제품은 저가 시장에서 근근이 버티고, 돈이 되는 프리미엄 시장은 외산에 뺏겼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프리미엄 선풍기는 영국 다이슨과 일본 발뮤다가 독식한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2017년 선풍기 시장에 도전키로 했다. 문 대표는 이탈리아의 도무스아카데미에서 디자인 석사를 받았지만, 학부는 영남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공학도다. 바람의 본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좋은 바람은 다들 자연의 바람이라고 하잖아요. 기존 선풍기는 애당초 자연과 무관한 인공 바람이에요.”

바람은 고기압 공기 덩어리가 저기압으로 이동하면서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을 스치는 현상이다. 선풍기는 빗살 형태 날개가 돌면서 공기를 조각내 앞으로 밀어낸다. 선풍기 바람이 따갑게 느껴지는 건, 바람 조각들이 원심력으로 돌면서 서로 부딪혀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엠아이디자인의 공기역학 특허는 이런 부딪힘을 없애기 위해 선풍기 바람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분리해 각각 속도가 다른 바람을 내보내는 방식이다.

“선풍기의 앞면 망을 안쪽은 좁고 바깥쪽은 넓은 이중 형태로 만들고, 선풍기 날개도 안쪽과 바깥쪽의 기울기를 다르게 했다”며 “같은 선풍기지만 안쪽은 바람 속도가 빠른 저기압, 바깥쪽은 속도가 느린 고기압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압인 바깥 공기가 저기압인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 합쳐진 뒤 앞으로 이동한다. 부드러운 바람이 된다는 것이다.

엠아이디자인이 출시한 선풍기 '서큘레이터 스탠드타입(CDS-14)'(왼쪽)과 '서큘레이터 플로어타입(CDF-14)'(오른쪽).

◇“다이슨보다 좋은 제품 만들고 싶어”

단 한 번에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온 건 아니다. 작년에 만든 1차 제품은 예상한 수준의 좋은 바람이 안 나와 포기했다. 올해는 이달 백화점·홈쇼핑 판매를 시작하자 반응이 좋아, 벌써 주변에선 "대량생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자금력, 부품 물량, 제조 역량 등을 냉정하게 보니, 올해는 1만5000대가 마지노선"이라며 "더 만들면 현재 품질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선 선풍기 핵심 부품인 모터의 물량 수급에 한계가 있다. 일반 선풍기는 AC모터(교류)를 쓰는데, 이 회사는 DC모터(직류)를 쓴다. 그는 "DC모터 중에서도 가장 소음이 적은 BLDC 모터를 사다 보니, 부품 가격이 일반 선풍기 모터의 10배 이상"이라고 했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서 이 선풍기는 초미풍 모드일 때 소음이 18~19데시벨이 나왔다. 도서관의 소음 기준이 40데시벨이다.

문 대표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음"이라고 했다. 문 대표는 옆에 있던 제품을 초미풍 모드로 돌렸다. 일반인의 귀로는 소음을 듣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는 한 외산 브랜드를 지칭 "광고 문구를 보니, 엄청 낮은 데시벨을 표기했는데 측정 기관명이 없다"며 "조금만 데시벨 수준을 아는 사람이면 이 제품을 돌리는 순간 알 수 있을 정도다. 너무 과도한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39만원은 선풍기 가격으론 너무 비싸지 않을까. 문 대표는 "비싼 제품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고 원하는 수준의 바람을 만드는 부품을 사다가 한국 공장에서 만들려니 이 가격이 나온 것"이라며 "비싸서 안 팔려도 중국에 제조를 위탁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