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24 대북 제재'에 대해 "남북 간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행 10주년을 앞둔 5·24 조치에 대해 "역대 정부를 거치며 유연화와 예외 조치를 거쳤다. 그래서 사실상 그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5·24 제재를 공식 해제한 건 아니지만 '구애받지 않겠다' '없는 셈 치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사실상의 '5·24 조치 폐기 선언'이란 해석도 나온다.

5·24 조치는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천안함을 폭침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부과한 제재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의 전면 금지'가 골자다. 10년간 일부 조항이 완화되긴 했으나 공식 해제된 적은 없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오에서 이탈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등을 감안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여권의 5·24 해제 요구에도 최근까지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응원단의 방한을 위해 5·24 제재를 일부 완화했지만 '일시적·예외적 조치'임을 명확히 했다. 북한 응원단을 태운 만경봉호 입항을 위해 제재를 일시 풀 때도 "논란이 일지 않도록 미국 등과 긴밀히 협의 중"이란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같은 해 10월 11일 국정감사장에선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이 "(5·24 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 "(북한의) 천안함 관련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은 미국의 승인 없이 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세 차례 반복하는 등 불만을 터뜨리자 급히 수습한 것이다. 통일부는 5·24 조치 시행 9주년이었던 작년 5월 24일 관련 질문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 내에서 유연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했지만 "5·24 조치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 조치"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날 '사실상 5·24 폐기 선언'으로 해석되는 언급을 하면서 '천안함 폭침' '국제사회' '제재의 틀' 같은 표현들을 모두 생략했다. 정부 주변에선 "총선 압승에 고무된 정부가 공격적인 대북 사업을 준비하며 5·24 조치를 사문화했다"는 말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5·24 조치는 남북관계 발전의 걸림돌"이라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북이 우리 제안에 호응해 올 때 속도감 있는 교류를 하려면 총선 승리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지금 5·24 문제를 정리하는 게 옳다"고 했다. 앞서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대표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5·24 조치를 해제한다는 언급이 (문 대통령의) 5·18 담화에 포함됐으면 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인정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무력화하는 것은 일방적 무장해제이며 국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미국의 반응이 관심사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 협력은 반드시 북한 비핵화의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비핵화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일각에선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발끈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5·24 대북 제재 조치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의 책임을 물어 북한에 가한 제재로 ▲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대북 반출·반입 금지 ▲북한 선박의 우리 영해 항해 불허 ▲우리 국민의 방북 금지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유일하게 예외로 인정된 개성공단은 2016년 1·2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가동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