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배님, 향수 한번 뿌려봐 주세요."(방송 시청자)

"그럼요. 보이세요? 분사력이 정말 좋은데요."(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배)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동영상이 아니다. 지난 14일 오후 10시 30분 네이버 앱에서 방송된 자라의 향수 판매 방송의 한 장면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배씨와 모델 주우재씨가 영업시간이 끝난 자라 강남점에서 1시간 동안 생중계한 이 방송은 3만2000여명이 봤고, '좋아요' 12만개를 받았다.

◇실시간 소통… 코로나로 급성장

코로나 사태로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라이브커머스'가 새로운 유통 트렌드로 급성장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는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TV 홈쇼핑처럼 물건을 파는 방송이다. 애초 라이브커머스는 동영상 친화적이고, 모바일 쇼핑이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소비문화가 '주류'로 떠오르면서 폭발적인 성장의 계기를 맞았다.

오프라인 매장의 장기 침체로 고민하던 대형 유통업체는 라이브커머스를 새로운 '돌파구'로 여기고 있고,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업체도 라이브커머스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백화점 입점 매장, 직구업체 등은 매출 회복을 위해 라이브커머스를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기존 온라인 쇼핑과 달리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한 것처럼 판매자와 실시간 소통을 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형 유통업체와 포털 사이트 등 대기업이 '판'을 깔아준 것도 소비자에게 기존의 개인 쇼핑 채널보다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라이브커머스의 원조는 중국이다. 둥베이증권에 따르면 작년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는 4338억위안(약 75조원)에 달한다. 구독자가 수백만~수천만 명에 달하는 '왕훙(網紅·소셜미디어의 유명 인사)'이 스마트폰을 들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중계로 물건을 판다. 지난 20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산시(陝西)성의 한 마을에서 지역 특산물인 목이버섯 라이브커머스 촬영 스튜디오를 직접 참관해 화제가 됐다.

◇네이버·카카오, 집중 지원

국내 양대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코로나 확산 이후 본격적으로 라이브커머스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모바일 앱 기반인 만큼 월간 앱 이용자 수가 3000만명이 넘는 두 회사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는 지난 3월부터 네이버쇼핑에 입점한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에게 라이브커머스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채팅 창 하단에 뜨는 구매 링크로 바로 물건을 살 수 있다. 한성숙 대표는 지난달 실적 발표 자리에서 "상반기 내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32만명 모두가 라이브커머스 툴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시범 서비스 중인 '톡딜 라이브'를 정식으로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작년 10월 자회사 카카오커머스의 공동 구매 서비스 '톡딜'을 홍보하기 위해 이벤트 형식으로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곱창·도시락·시계 등 상품을 판매했는데, 동시 접속자가 4만명까지 치솟았다.

◇유통 대기업·스타트업도 시작

오프라인 시장의 대형 유통업체도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12월부터 하루에 두 번씩 백화점 매장에서 쇼 호스트와 인플루언서가 실시간으로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부터 네이버 라이브를 통해 백화점 상품을 실시간 영상으로 판매한다. 지난달 11일 남성복 브랜드 '지이크' 첫 방송 때 1시간 만에 한 달 매출의 30%에 달하는 1000만원어치를 팔았다. 코로나로 방문 손님이 줄어 타격이 큰 백화점 입점 매장에 가뭄에 단비 같은 기회였다.

2017년 이커머스 업체 중 최초로 라이브커머스를 시작한 티몬은 일반 판매자가 직접 물건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개인방송 플랫폼 '티몬셀렉트'를 최근 시작했다. 티몬은 "방송 1회당 이용료 30만원만 내면 홈페이지와 앱 메인 상단 화면에 1시간 동안 방송 배너가 올라가는 광고 효과도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들도 라이브커머스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작년 2월 오픈한 모바일 라이브커머스 스타트업 그립은 올해 4월까지 누적 다운로드 70만건, 입점 기업 2000곳을 기록했다. 그립은 개그맨 유상무 등 유명인들을 쇼 호스트로 영입해 '방송 보는 맛'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상공인 판로 개척에도 라이브커머스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내 과일을 해외에 수출하는 코코마켓은 코로나 사태로 항공 물류가 막히면서 매출이 95%나 줄었다. 수출 못 한 천혜향과 한라봉을 그립을 통해 국내에서 방송했는데, 1시간 만에 3t을 팔아 치웠다. 김한나 그립 대표는 "라이브커머스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어 더 믿음이 가는 쇼핑"이라며 "언택트 트렌드에 가장 잘 맞는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

판매자가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TV 홈쇼핑처럼 물건을 파는 방송. 판매자와 구매자가 실시간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별다른 장비가 없어도 누구나 방송할 수 있다. 유튜브처럼 영상이 계속 남아 방송 시간과 상관없이 쇼핑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