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도쿄 특파원

며칠 전 일본에서 효고현(縣) 어린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지역 의료인들에게 수제 방호복을 기부한 사실이 언론에 비중 있게 보도됐다. 의료용 방호복이 부족하다고 하니 한 학교 법인에서 유치원생까지 나서 비닐봉지, 가위, 테이프로 간이 방호복 1400장을 만들어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미담'처럼 포장돼 매스컴을 탔다.

일본인들 반응은 싸늘했다. '생명이 걸린 일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방역에 해가 되니 기사화하지 말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중 '전쟁 중 죽창(竹槍)만큼 역겹다'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사들에게 죽창에 폭탄을 꽂아 탱크를 상대하게 했던 일, "폭격기를 격추하겠다"며 부녀자들까지 죽창술을 훈련한 일에서 유래한다. 무모함의 대명사로 꼽힌다.

각종 재난 때마다 '○○해서 응원하자'며 캠페인을 벌이고 호응하는 일본 사회가 이 정도로 무기력하고 회의감에 빠진 건 이례적이다. 어느 때보다도 자국 정부의 실책·무능이 가감 없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비교 대상이 한국이란 점이 일본인들을 더 예민하고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초기 방역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보건 당국과 의료진의 헌신, 다수 시민의 성숙한 의식 덕에 큰 고비는 한 번 넘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감염 경로 파악과 확진자 관리 과정에서 활용한 빅데이터 등 정보 기술은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죽창에 비교하면 초음속 전투기쯤 돼 보일 것이다.

일본에선 한·일 간 차이가 '경험 유무'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 사회가 선례와 그에 따른 지침에 좌지우지된다는 건 익히 알려졌다. 한국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병 당시 감염자·사망자 세계 2위(감염 186명, 사망 38명)를 기록했다. 반면 일본은 감염자가 0명이었다.

그러자 "왜 한국을 필사적으로 배우지 않는 건가"(뉴스위크 일본판)라는 유의 목소리가 나왔다. 매뉴얼이 없으면 한국을 귀감(龜鑑) 삼으라는 주장이다. 뉴스위크는 아직도 보건소에서 종이와 연필, 전화로 감염자 경로를 쫓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전차에 죽창' 정도가 아니라 '로켓포에 활'로 싸우는 격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일본이 부러워 마지않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서울 이태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하루 확진자가 두 자릿수로 늘고 있다. 지자체와 일부 젊은이의 방심이 빚은 실책이다. 이 일도 실시간으로 일본에 전달되고 있다. 일본 각 매체의 기사 논조부터 독자 반응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한국의 실수를 참고해 우린 절대 방심하지 말자"는 식이다. 일본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타의 모범'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급반전했다. 이래저래 주목을 받는 'K방역', 이런 본보기는 달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