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임혜진(36) 간사는 지난달 30일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를 정리하다 깜짝 놀랐다. 올해 1~4월 모바일과 홈페이지를 통한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가 1만96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648명)보다 200% 늘었기 때문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장기 기증 희망 서약 등록 기관. 국내 장기 기증 희망 서약 150만 건 중 약 100만 건이 운동본부에서 이뤄졌다.
그런 장기기증운동본부도 사실 올해 1분기에는 걱정이 많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번지면서 학교나 교회 등에서 진행하던 장기 기증 캠페인이 대부분 취소됐기 때문이다. 2~4월은 전통적으로 장기 기증 희망 서약 '비수기'다. 연말이나 연초에 희망 서약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는 서약자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은 뇌사하거나 심장마비 등으로 숨질 경우 장기나 인체 조직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은 없다. 뇌사자가 생전에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해도, 막상 가족이 반대하면 기증이 이뤄지지 않는다. 장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사람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
장기기증운동본부 김동엽(49) 사무처장은 "오프라인의 경우 대상자를 찾아가서 캠페인이나 설명 등으로 기증 서약을 이끌어내는 거라면, 온라인은 희망자가 직접 장기 기증 정보를 찾아보고 먼저 의사를 밝힌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코로나로 생명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달은 분들이 장기 기증 희망 등록으로 마음을 표현해 준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월 장기 기증 희망 서약을 한 원다희(19)씨는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의 얼굴이 (마스크와 고글 착용으로) 짓무른 모습을 보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울컥하곤 했다"며 "나도 뭔가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장기 기증 서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희망 서약은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더라도 장기 기증 확산 문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장기·조직 기증에 있어서 최하위다. 인구 100만명 중 뇌사 장기를 기증한 사람이 한국은 8.6명(2016년 기준).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5배(48명), 미국은 4배(33명) 더 많다.
장기 기증 희망 서약 등록자에게는 '장기 기증 등록증'과 신분증에 부착할 수 있는 '장기 기증 스티커'를 준다. 또 서약자의 의사에 따라 운전면허증에도 '장기·조직 기증' 표시를 할 수 있다. 김 처장은 "장기 기증 결정은 결국 가족이 하게 되는데, 위급한 상황에서 고인의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신분증이나 장기 기증 등록증으로 장기 기증 의사 표시를 해놓으면 가족이 고인의 유지를 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희망 서약자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 저 사람도 희망 서약했구나' '무서운 일이 아니구나' 같은 용기를 준다.
실제로 지난 3월 장기 기증 희망 서약을 한 강숙영(45)씨도 "주변에서 장기 기증 서약 후 실제 기증까지 한 분이 계셔서 희망 서약을 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며 "사람이 죽으면 어차피 화장하는데, 결국 똑같은 과정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최근 의학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이 희망 서약자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월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는 한 구급대원이 근무 중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져 장기 기증을 하는 일화가 방영됐다. 최근 방영 중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도 생존 시 장기 기증, 뇌사 시 장기 기증을 다룬 바 있다. 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에는 '매번 생각만 하다가 드라마를 보면서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신청한다' 같은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는 간을 이식받은 영아의 부모가 의료진에게 감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담당 주치의는 감사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진짜 감사는 간 주신 분에게 하세요. 아이 생일이 돌아오면 그분한테 감사하다고 인사 한 번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