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한 지역의 마약 카르텔 조직원이 생필품과 음식이 들어있는 비닐 꾸러미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검정색 방탄 조끼를 입고 총으로 무장한 마약 카르텔 조직원이 광장에 차를 세우자 사람들이 그 앞에 일렬로 줄을 선다. 한 손에 총을 든 남성들은 타고 온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고 줄 선 사람들에게 마약 카르텔 두목의 얼굴이 그려진 커다란 꾸러미를 하나씩 나눠준다. 사람들은 비닐 꾸러미를 한아름 받아들고 활짝 웃는다. 이들이 나눠준 꾸러미 안에는 물과 과자 같은 음식, 휴지 등 생필품이 들어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멕시코에 퍼지면서 시민들의 생활이 무너지자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시민 구제에 나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에도 “외출과 외식을 멈추지 말라”는 등 역주행을 하면서 멕시코 코로나 확진자는 15일(한국 시각) 기준 4만2000명을 넘었다. 이로 인해 많은 멕시코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자 마약 카르텔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멕시코 정부도 카르텔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의 얼굴이 그려진 장난감. '엘 차포'가 이끌던 마약 밀매 조직의 조직원들이 코로나 사태로 지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WSJ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멕시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약 카르텔 뿐만 아니라 여러 범죄 집단이 생필품이나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나눠주는 등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국민들 사이에서는 생필품을 나눠주는 마약 카르텔의 인기가 헛발짓만 하는 대통령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마약 카르텔을 향해 “원조를 그만두라”고 명령하며 “마약 카르텔은 무고한 시민 수만명을 죽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지원이 순수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계산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어려운 시기 사람들의 환심을 사 뒀다가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 수사를 방해하는 등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멕시코 전 법무부장관인 리나토 살레스씨도 “마약 카르텔이 코로나를 이용해 인기를 얻으려 한다”며 “이는 사법기관이 법을 집행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