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김승진 옮김 생각의힘|648쪽|2만7000원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州)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소득 하위 30%에 해당하는 약 1억명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이다. 수도 델리 근처로 거처를 옮겨 막노동만 해도 하루 2달러로 소득이 '껑충' 뛴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정통 경제학에서 논란거리가 되지 못한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당연히 짐을 싸서 이주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떠나는 이는 소수이고, 훨씬 많은 주민이 생활개선의 이득을 포기하고 고향에 눌러앉았다. 이 책을 쓴 부부 경제학자 배너지와 뒤플로는 현장에서 얻은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빈곤 퇴치법을 연구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두 학자는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경제학의 전제는 현장에선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포기하고 고향에 눌러앉는 이유는 그곳에 부모가 있고,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가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때 손 내밀어 줄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소득에만 초점을 맞춘 경제 이론을 초점이 왜곡된 렌즈에 비유하며, 이런 렌즈는 많은 사람을 그릇된 강박으로 이끄는 나쁜 경제학이라고 지적한다. 좋은 경제학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아야 하며, 이는 정책 입안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다. 좋은 경제학은 빈민을 도시로 이주시키려 할 때, 소득을 높여주기 위해 이윤 동기뿐 아니라 다른 유인책을 내놓는다. 가령 이주할 곳에 직장부터 알선해주고, 새로 이사할 지역에 아이 돌봄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목표를 이루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는 예측이 무척 어려운 분야인데도 많은 학자가 현장 파악에 앞서 목소리부터 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그런 학자들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해 함부로 예측하고 결론을 단정 지으며 자신의 견해를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한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만 의견을 나누는 세태도 이런 경향을 악화시킨다. 여기에 편 가르기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정치인들도 가세해 혼란을 가중시킨다.

경제 위기가 닥친 베네수엘라 주민들이 2017년 11월 수도 카라카스 거리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차베스 전 대통령과 마두로 현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단숨에 해결할 것처럼 선전했지만 국민에게 빈곤만 안겼다.

이민자 문제, 적정 과세율, 세계화와 시장 개방 등 찬반이 갈리는 경제 이슈들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도 '귀를 닫고 떠들기만 하는' 나쁜 경제학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극우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은 이민자 유입에 분통을 터뜨리지만, 막상 이민자 비율이 EU 인구 250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공허한 주장을 반복한다. 산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쪽으로만 경제정책을 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국이 비교 우위를 가진 산업을 키워 교역하자는 리카도의 무역 이론을 무차별 적용하면 경쟁력 없는 분야 종사자들은 거리에 나앉게 된다. 이는 창조적 파괴이긴커녕 사회적 갈등을 위험 수위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민주주의마저 쇠퇴하고 있다는 두 저자의 진단을 곱씹게 된다. 선거가 부족 간 대결로 타락하면서 합리적 경제정책이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공감한다. 그런 점에서 두 저자가 후반부로 갈수록 진보적 경제정책만 옹호하고 보수 정책을 일관되게 비판하는 태도는 아이러니다. 두 저자는 법인세 인하가 경제성장을 견인한다는 보수 경제학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면서 세율 인상이 경제에 도움된다는 증거는 내놓지 않는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선전하는 기적의 해법은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다"며 그 사례로 베네수엘라를 언급한 것도 의아하다. 지금 베네수엘라가 빠진 위기는 산업 경쟁력을 좀먹어가면서까지 극빈층 주머니에 현금을 찔러준 차베스와 마두로의 좌파 정책 탓이 크지 않은가.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저자의 논거는 반대 의견과 동일한 비중으로 다뤘어야 했다.

경제학이 힘든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저자들 말마따나 각자의 반향실에서 빠져나와 다른 의견을 들어야 한다. 두 사람은 합의에 도달한다면 좋겠지만 ‘합리적인 불일치’에 이르러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했다. 책의 서두에서 제안했듯, 다양한 아이디어와 해법을 펼쳐놓고, 실패 가능성까지 두루 검토하면서 때로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열린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