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서울 종로) 심재철(안양 동안을) 이언주(부산 남을)는 낙선했고 박대출(경남 진주갑) 김태흠(충남 보령·서천) 윤영석(경남 양산갑)은 당선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삭발’. 지난해 삭발 투쟁을 한 야당 현역 의원들이다. 모두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았지만 당락은 갈렸다.

지난해 5월 2일 자유한국당 성일종, 김태흠, 이장우, 윤영석 의원 등이 국회 본관 앞에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삭발하고 있다.

정치인에게 삭발은 일종의 자해(自害)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몸으로 외치는 결연한 항의 표명이다. 언론도 집중한다. 단식과 견주면 삭발은 통증이 없고 3분이면 끝난다. 머리카락은 또 금방 자라날 것이다. 그래서 "공천을 노린 충성 경쟁"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삭발이 그 정치인의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번 4·15 총선이 입증했다. 머리카락을 다 밀고 나서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도 있다. 또 누구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경선 기회를 얻고 탈락한 사람도 있다. 공천받아 출마했더라도 유권자가 삭발 투쟁에 꼭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결과를 놓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9월 10일 무소속이던 이언주 의원은 조국 법무장관 임명 철회와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삭발했다. 이 의원은 "문 대통령의 아집, 오만함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타살됐다"고 말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얼마나 아름다운 삭발이냐. 야당 의원들이 이언주 의원의 결기 반만 닮았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썼다.

이튿날 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동참했고 닷새 뒤 황교안 대표도 삭발식을 열었다. 김문수 전 의원, 강효상 의원, 이주영 의원, 심재철 의원, 차명진 전 의원, 이만희 의원, 송석준 의원, 김석기 의원, 최교일 의원, 장석춘 의원…. 조국 파면을 촉구하는 릴레이 삭발이 이어졌다. 정계에서는 "지지층 결속을 다지고 '반(反)조국 투쟁' 여론을 환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가 단식, 삭발, 의원직 사퇴"(박지원)라는 혹평도 나왔다.

이들 가운데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은 황교안·심재철·차명진·이만희·송석준·김석기. 나머지는 불출마하거나 공천에서 제외됐다. 15명이 삭발했지만 이번에 금배지를 단 사람은 이만희(경북 영천·청도) 송석준(경기 이천) 김석기(경북 경주) 등 3명뿐이다.

앞서 지난해 4~5월에는 선거법·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상정한 데 반발해 박대출·김태흠·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과 이창수 충남도당 위원장 등이 머리카락을 다 밀었다. 이들은 대부분 공천권을 따냈고 박대출·김태흠·윤영석·성일종(충남 서산·태안)이 당선됐다. 삭발이라는 정치적 행동은 같았지만 국회로 생환한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조국 사태 때 삭발과는 성적표가 극명하게 갈린 셈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삭발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7년. 박찬종 의원이 김영삼·김대중 대선 후보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머리카락을 밀었다. 이후 큰 정치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삭발 정치'가 나타났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설훈 의원이 삭발했다. 2013년에는 통합진보당 의원 5명이 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해 집단적으로 머리카락을 밀었다.

한국 정치는 감성에 지배받는다. 이성이나 합리적 정책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삭발은 결의를 보여주려는 행동일 뿐, 정치인의 정책적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의 삭발과 지금의 삭발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삭발이나 단식은 ‘쉬운 정치’이고 한국 정치가 빨리 버려야 할 구습(舊習)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형준 교수는 “과거의 386 운동권은 정치를 투쟁으로 잘못 배웠고, 국회를 보복하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삭발이나 단식을 한다고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며 “차분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