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하러 나가도 될까요?"

서울 명동에서 38년째 한식당을 하고 있는 오모(62)씨는 18일 아침 이런 전화를 받았다. 10년을 함께 일하다 지난달 1일 내보낸 주방 직원 김모(60)씨였다. 김씨는 "난생처음 파출부 일과 이사 청소까지 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오씨는 "아직 어렵겠다. 조금만 더 참자"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올 초까지 오씨 삼겹살집 직원은 모두 10명이었다. 가장 신참이 8년 차고 고참은 15년이나 됐다. 식당 일로 고락을 함께 나눈 식구 같은 그들을 오씨는 지난달 들어 한 명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보자"고 했지만, 언제가 될지 가늠조차 못 한다. 이제 가게엔 홀 서빙 직원 한 명, 주방 직원 한 명만 남았다. 오씨는 "가족 같은 직원들인데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내려진 철제 셔터마다 낙서 -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굳게 닫힌 의류 상점 앞을 한 시민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고 있다. 서울의 대표 상권인 명동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발길이 끊겨 오후 8시면 어두컴컴해진다. 상인들은 "문을 열어도 장사가 안돼 인건비라도 아끼기 위해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명동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상권(商圈)으로 꼽히는 곳이다. 단위 면적당 공시지가 전국 1~10위가 모두 명동에 있고, 가장 비싼 네이처리퍼블릭 부지는 공시지가가 평(3.3㎡)당 2억원에 달한다. 이런 최고 요지의 음식점과 옷가게들도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영업 죽음의 계곡'에 빠져들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끊기고 국내 젊은이들도 코로나 발원인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다는 이유로 최근엔 기피하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쇼핑객들로 붐볐을 일요일인 19일. 명동의 메인 거리(명동역~유네스코길) 양옆 점포 50여개 가운데 24개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4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으나 이날 명동의 한 의류잡화점 옷걸이에는 아직 겨울 패딩과 후드티가 걸려 있었다. 직원 정모(30)씨는 "손님이 없어서 봄 신상품을 들여놓지 않았다"며 "겨울 재고라도 처리하기 위해 내놓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야성을 이루던 명동 거리는 이날 저녁 8시가 되자 마치 정전이라도 된 듯 컴컴해졌다. 내려진 철제 셔터마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가 돼 있어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의 4월 중순 풍경이었다.

오씨 삼겹살 가게는 원래 주말 하루 평균 매출이 400만원이었다. 하지만 지난 18일(토요일)은 삼겹살 2인분에 밥공기 2개, 2만8000원이 전부였다. 19일은 오후 4시까지 첫 손님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오씨는 "4월 내내 번 돈이 겨우 20만원"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50평에 20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조금 깎아줄 수 있느냐고 건물주에게 문의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고 했다. 건물이 여러 명 공동 명의로 돼 있어 뜻이 잘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가게는 오씨에게 인생이나 다름없다. 나이 스물넷에 테이블 6개짜리 생선구이 백반집으로 장사를 시작해 50평짜리 번듯한 고깃집을 일궜다. 오씨는 "테이블을 하나씩 늘려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라며 "평생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24시간 운영해왔는데 이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 없다"고 했다. 오씨는 끝내 손등으로 눈물을 찍었다.

종업원 사정은 더했다. 10년 차 직원 손모(63)씨는 이달 초부터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손씨 남편과 큰아들(40)은 모두 아파 누워 있다. 손녀(4)까지 합쳐 네 식구 생계를 손씨가 책임져왔다. 손씨는 "휴직하고 곧장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한다"고 했다. 식당에선 월급이 250만원이었으나 월수입이 200만원으로 줄었다. 손씨는 "수입도 줄었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익숙지 않아 어서 식당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작은 가게가 몰린 명동 이면도로 상황은 큰길가보다 더 심각했다. 이날 명동 4길에선 두 집 건너 한 집씩 문이 닫혀 있었다. 류진선 명동라온공인중개사 대표는 "이렇게까지 공실이 많은 건 20년 동안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명동 거리를 채우고 있던 노점 200여개도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15일에는 1곳, 18일엔 3~4곳만 영업을 했다. 그중 한 곳인 황모(48)씨의 간식 노점에 15일 저녁 진열된 음식은 핫도그 2개, 소시지 2개, 소떡소떡 2개가 전부였다. 황씨는 "음식을 만들어놨다가 못 팔면 버려야 한다. 나 혼자 일하니 인건비는 밑져야 본전이지만 재료값은 그대로 날리는 것 아니냐"고 했다. 황씨는 이날 낮 3시에 나와서 5시간 동안 가게를 지키며 2만원을 벌었다. 명동에서 7년째 갈비집을 운영하는 정모(51)씨는 "월세 800만원에 인건비 460만원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달부터 아예 휴업하고 있다. 언제쯤 다시 명동에 봄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