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 4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 홈구장 에베츠 필드. 재키 로빈슨(1919~1972)이 42번 유니폼을 입고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타석에 섰다. 그날 이후 스포츠는 피부색을 문제 삼지 못한다. 매년 4월 15일 '로빈슨 데이'엔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가 42번 유니폼을 입고 인종차별 벽을 깬 로빈슨을 추모하며 야구 한다. 로빈슨 데뷔 73주년인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대신 이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는 로빈슨의 현역 시절 경기 하이라이트와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공개하며 추모 이벤트를 했다. 로빈슨의 전기 영화 제작사는 의료 장비 420만달러어치를 기부했다.

미네소타 트윈스가 작년 재키 로빈슨 데이에 홈구장 전광판에 띄운 로빈슨의 사진.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두고 브랜치 리키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 단장과 '가상 인종차별' 연습을 혹독하게 했다. 그는 깜둥이나 노예 자식, 목화밭 등 어떤 욕설을 듣더라도 참겠다고 다짐했고, 팀 동료들과 같은 숙소도 못 쓰고 빈볼이 난무하는 상황을 견디면서 데뷔 3년 만에 메이저리그 타격왕과 MVP를 차지했다. 로빈슨은 월드시리즈 네 번의 실패(1947·1949·1952·1953년)를 딛고 1955년 마침내 챔피언 반지도 꼈다. 자신을 저주하던 백인 야구인들에게 "날 싫어하든 좋아하든 사람대접만 해달라"고 싸워가며 이룬 성취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흑인 유격수 팀 앤더슨(27)은 시즌 개막을 무작정 기다리며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으면서 재키 로빈슨 데이의 의미를 가슴으로 깨달았다고 NBC스포츠에 15일(현지 시각) 전했다.

"그가 홀로 감내했을 차별과 혼돈에 비하면 다 같이 고생하는 지금은 그나마 견딜 만한 것 아닐까요. '불확실성'을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번에 제대로 느꼈어요."

마리아노 리베라(은퇴)는 42번을 달고 뛴 최후의 선수다. 1997년(로빈슨 데뷔 50주년) 전 구단이 42번을 영구결번 하기 두 해 전 데뷔한 덕분이다. 그는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로서 만장일치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리베라도 "재키가 최초의 42번으로 입성했고, 나는 마무리로서 마지막에 들어갔다. 각본을 써도 이렇게는 못 한다"며 "그가 이룩한 유산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다 코로나 희생국이 된 미국에선 마스크 쓴 아시아인을 폭행하거나 욕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진다. 전체 코로나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이 70%로 압도적이다. "그저 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해달라"던 로빈슨의 외침이 올해는 유독 울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