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한 음악기획사가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 '디지몬 어드벤처' OST 앨범을 만들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2000년 국내에서 TV로 방영됐던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본이 필요한 사업자가 대중을 상대로 직접 자금을 모으는 걸 말한다.

이번 펀딩 목표액은 3500만원이었다. 그런데 펀딩 시작 40일 만에 12억6700만원이 모였다. 2만5500여 명이 참여해 목표 달성률 3600%를 기록했다. 디지몬 방영 당시 초등학생이던 20대 후반~30대 초반 연령대가 대거 몰려든 것이다. 대학생 유한솔(26)씨도 그중 한명이다. 아르바이트로 월 50만~70만원을 버는 그는 이번에 5만원을 보냈다. 유씨는 "시험 기간이나 심리적으로 힘들 때 어린 날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나 음악을 감상하면 힘이 난다"며 "그 시절 즐겼던 문화 콘텐츠를 더 고품질로 누리고 싶어 펀딩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3300만원을 목표로 진행된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OST 앨범 발매 크라우드 펀딩도 27일 만에 7만2500여 명이 몰리며 26억원 이상이 모였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생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소비 주체로 부상하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유행했던 콘텐츠들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옛것을 새롭게 향유하는 '레트로'(복고) 유행,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젊은 세대의 풍조가 이런 현상을 이끌고 있다. 1970년대생과 1980년대생들이 2010년대 초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로 상징되는 1980~1990년대 복고풍을 유행시켰다면, 최근엔 1990~2000년대 문화 콘텐츠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집콕(집에 틀어박힘)족(族)'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1990~2000년대 가정용 게임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닌텐도'의 부활이 대표적이다. 2017년 출시한 최신 모델 '닌텐도 스위치'는 지난달부터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중고 가격이 새 상품 가격(32만원)을 웃돌고 있다.

기존 인기 게임이 집콕족을 겨냥해 새 기능을 추가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에 '증강현실'을 적용, 이용자가 야외를 돌아다니며 캐릭터를 수집하도록 설계돼 2017년 출시 직후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게임 '포켓몬고'는 이달 1일 '실내 플레이 기능'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인 '포켓몬스터' 역시 1999~2002년 국내에서 TV로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이다.

복고 열풍은 "추억 속 좋은 기억을 재소비하는 행위"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사회생활 시작부터 취업난·주거난에 직면한 젊은 세대가, 근심 없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마음으로 빚어낸 현상"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소득이 많지 않더라도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소비 패턴을 보인다"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단체로 모여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액티브 소비자로서 모습이 새로운 문화 소비 계층으로서 특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