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재혼 승인을 요구합니다."
한 문장에서 시작된 웹소설이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달 31일 완결된 웹소설 '재혼황후'는 누적 다운로드 7000만회를 기록한 화제작이었다. 웹소설·웹툰 플랫폼인 '네이버 시리즈' 광고에서 영화배우 수애가 재혼황후의 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웹소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입문하게 하는 '웹소설 입문작'으로 꼽힌다.
황후는 재혼 못하나? 진취적인 황후 캐릭터가 인기 요인
‘재혼황후’는 노예와 사랑에 빠진 황제가 이혼을 요구하자, 옆 나라 황제와 재혼을 선언하는 당찬 황후 ‘나비에’의 이야기다. 불륜·막장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황제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진취적 캐릭터가 인기 요인이다. 완결 후 이메일로 만난 작가 ‘알파타르트’(필명)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정략결혼을 한 차갑고 무뚝뚝한 황후는 보통 악역이나 조연으로 등장해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인공한테 밀려나지 않나”라면서 “황후의 관점으로, 황후는 재혼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알파타르트’는 이름과 나이, 얼굴을 밝히기 꺼렸고 성별이 여자라고만 했다. 학생 때부터 꾸준히 여러 장르의 글을 써왔다고 한다. “무명 시절이 길어서 작품 외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주위 사람들이 어머니한테 ‘글만 써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 ‘취업부터 하고 남는 시간에 글을 써야지, 순서가 틀렸다’ ‘딸을 현실적이지 못하게 키웠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거든요.”
웹툰·웹소설 불어로도 번역돼 인기…문장력·오탈자 논란도
'재혼황후'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로 가상의 제국인 '동대제국'과 황후, 시녀, 하녀들이 등장해 서양 궁중을 떠오르게 한다. 구체적으로 시대가 드러나진 않는다. 작가는 "여러 나라의 여러 시대 문화가 뒤섞여 있고, 어느 시대와도 관련 없는 설정도 존재한다"고 했다.
특히 주인공들의 이름이 독특하다. 황후는 '나비에 엘리 트로비', 황제는 '소비에슈 트로비 빅트', 옆 나라 황제는 '하인리 알레스 라즐로'다. 서양식 이름 덕분인지 불어로도 번역돼 프랑스에서도 웹툰으로 읽히고 있다. 알파타르트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성격이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지었다"면서 "독자들이 등장인물에 별명을 많이 붙여주는데, 신기하고 기발한 별명들이 많다"고 했다. 사랑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진 황제 소비에슈는 '개비에슈''뇌비었슈' 같은 별명들이 붙었다.
장면 묘사보다는 대화체 위주로 쉽게 읽히지만, 논란도 많았다. 폭이 좁은 단어 구사나 문장력, 빈번한 오탈자로 팬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기본적인 맞춤법이 틀려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문장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알파타르트는 “여러 종류의 사전을 사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면서 “차기작에선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달라진 것 없다. 고양이 사료만 업그레이드 됐을 뿐”
그가 생각하는 웹소설의 매력은 "여러 방향으로 상상을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과 접근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독자들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특히 독자들의 댓글을 보며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거나 예리하게 다음 이야기를 추측하는 것을 보고 매번 놀랐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2018년 웹소설 시장을 4300억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네이버 웹소설 연재 작가 중 억대 연봉을 받는 작가도 26명에 달한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웹소설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재혼황후'도 웹툰에 이어 드라마화하기로 확정됐다. 알파타르트는 "재혼황후를 쓴 뒤로 생활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 고양이들 사료만 조금 업그레이드 됐다"면서 "항상 제 방에서 작업하고, 잘 때와 밥 먹을 때를 빼면 늘 글을 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