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면서 함장이 탄원 편지를 보냈던 미 핵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의 승조원들이 드디어 ‘이함(離艦) 명령’을 받았다.

AP통신과 CNN 등 외신은 1일(현지 시각) “루스벨트함의 승조원 중 일부가 괌의 호텔에 격리된다”고 전했다. 루스벨트함 함장인 브렛 크로지어 함장은 함 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자 지난 30일 승조원들을 배에서 내리게 해달라는 편지를 미 국방부에 보냈다. 해당 편지가 31일 미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들 승조원을 어떻게 격리시킬지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대원들을 코로나 위험에서 한시라도 빨리 대피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각종 무장과 전투기를 갖춘 군함에서 승조원 대부분을 내리게 하는 게 맞느냐는 반론이 팽팽히 부딪혔다.

미 핵 항모 루스벨트함

토머스 모들리 미 해군장관 대행은 이날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93명의 승조원이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서 “지금까지 4800여명의 승조원 중 1273명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으며 일부에 대해서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 약 600명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어 “승조원 1000명이 현재까지 항모가 육상으로 이동했다”면서 “앞으로 이틀 안에 2700명이 배에서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이크 길데이 해군 작전사령관은 “원자로 가동 등 필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승조원 전원이 배를 떠나지는 않는다”면서 “약 1000명이 배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크로지어 함장은 필수 업무 수행을 위해 500명 정도를 남기는 것을 제안했다. 크로지어 함장은 편지에서 “지금은 전시가 아니다. 승조원들이 죽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지금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산인 승조원들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며 대책을 촉구했다.

모들리 대행과 길데이 작전사령관은 루스벨트함이 얼마나 괌에 정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하지만 승조원들이 14일간 격리 상태에 들어갈 경우 루스벨트 함이 몇주 동안 작전에 투입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진단했다. 루 리언 게레로 괌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해군 장병들이 배에서 내려 괌의 호텔 객실에 묵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미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기자회견에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미군 임무 중단(shut down) 요구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그건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서 “우리는 조국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위해 전차, 잠수함, 항모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근무하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게 우리 역할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미 핵 항모 루스벨트함.

루스벨트함은 지난 24일 처음으로 확진자가 3명 발생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약 100명까지 확진자가 폭증했다. CNN에 따르면 또 다른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루스벨트함은 전투기 60대, 미사일 격납고 590개를 가지고 있다. 길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눕힌 것과 비슷해 '큰 지팡이'란 별명이 있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을 압도하는 전력으로 미군의 태평양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