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시중은행 입출금 계좌에 목돈을 쌓아뒀던 회사원 이모(39)씨는 지난 31일 우연히 저축은행중앙회 애플리케이션 'SB톡톡'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대부분 1%대였는데, 2%대가 수두룩해진 것이다. 이씨는 서둘러 3000만원으로 연 2.2%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남은 돈도 다른 저축은행에 예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기준금리가 0%대라고 해서 정기예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뜻밖에도 저축은행 금리가 올라 횡재한 기분"이라고 했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0.75%로 인하된 지 2주째.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도 빠르게 0%대로 수렴하는 가운데 저축은행들은 오히려 하나둘 예금금리를 올리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무슨 이유로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을까.
◇저축은행 금리는 역주행, 왜?
국내 1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은 지난 31일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0.3%포인트 인상한 2.0%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비대면으로 가입하면 연 2.1% 금리를 준다. OK저축은행도 'OK안심정기예금' 금리를 기존 연 1.9%에서 2.1%로 0.2%포인트 높였다. 이 밖에 아주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2.2%, 바로저축은행의 SB톡톡 정기예금 금리가 2.2%로 상향 조정되는 등 상당수 저축은행이 발 빠르게 정기예금 금리를 2% 위로 조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취합하는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 사이트에는 1일 기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2% 이상인 저축은행 상품이 70여 개나 된다.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정기예금 금리 상승은 코로나 사태로 회사채 발행 시장이 얼어붙은 것과 연관이 있다. 시중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평상시 캐피털사를 통해 대출을 많이 받는다. 캐피털사들은 자기자금이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대출 수요를 충당한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사태로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회사채 발행 금리가 뛰고 사실상 발행이 불가능한 지경이 됐다.
캐피털사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중소기업 대출 수요가 저축은행으로 일제히 몰렸고, 대출 여력을 확충하기 위해 저축은행들이 예금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대출 문의가 많아 대출 수요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예금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며 "금리를 0.1%포인트만 높여도 돈이 확 들어오기 때문에 저축은행들이 일제히 예금 금리를 상향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0%대로
반면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는 0%대로 낮아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1일부로 예·적금 상품의 금리를 0.2~0.5%포인트 인하한다. '주거래정기예금'의 기본금리가 1.25%에서 0.75%로, '고단위플러스정기예금'은 1.2%에서 0.7%로 각각 내려간다. '급여하나월복리적금'은 만기 1년 기준으로 기본금리가 1.5%에서 1.3%로 인하된다.
KB국민은행도 지난 25일부터 수신상품 금리를 잇달아 조정했다. '국민수퍼정기예금'의 금리를 계약 기간에 따라 0.15%포인트 또는 0.05%포인트 내렸고, 27일에는 'KB X BTS 적금Ⅱ' 금리, 30일에는 'KB 스타 정기예금'과 'KB우대저축통장' 'KB우대기업통장' 금리를 각각 인하했다. NH농협은행도 정기예금인 '큰만족실세예금'의 기본금리를 기존 1.1%에서 0.75%로, 'NH주거래우대적금'의 금리를 만기 1년 기준으로 1.25%에서 0.85%로 각각 내렸다.
한국은행이 31일 발표한 '2020년 2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은행권 저축성 수신금리는 0.11%포인트 내린 1.43%로 2016년 10월(1.4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됐다. 0.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가 반영된 3월 집계치는 이보다 훨씬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