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신(神)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하는 에쓰오일이 희망퇴직을 검토 중이다.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에쓰오일은 평균 연봉 1억3700만원에 근속 연수 16년으로 삼성전자(1억1900만원·11년 6개월)보다 좋은 '알짜' 직장이다. 이런 회사조차 코로나 사태로 원유와 석유 제품 가격이 동시에 추락하면서 정제 마진 감소와 재고 평가 손실을 버티기 어렵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정유 회사 현대오일뱅크도 최근 임원 급여 20% 반납 등을 포함한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1분기에 2000억원 이상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SK이노베이션은 석유 제품 수요 감소로 이번 달 가동률을 15% 줄였다. 코로나 여파로 초토화한 항공 업계에서는 휴직자만 무려 1만여 명에 이른다.

5대 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상시 시스템을 만들어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제철이 희망퇴직을 받았고, 현대로템도 진행 중이다. LG그룹의 LG디스플레이도 생산직·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매장 700여곳 중 수익성이 나쁜 200곳을 정리하겠다고 밝힌 롯데그룹에서는 적어도 1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발(發) 구조 조정 칼바람이 국내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내몰린 국내 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 조정에 나서기 시작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여행·유통뿐 아니라 정유·자동차·조선·철강 등 제조업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주력 제조업이 새로운 성장 전략을 찾지 못하는 사이 중국 등의 추격을 받아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흐름에서도 앞서나가지 못해 만성적 저성장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 등 반(反)기업 정책이 쏟아져 나오며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코로나발 폭풍에 휩싸였다.

현재 국내 항공사 9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4만2000여 명. 이 중 무급·유급 휴직자는 1만800여 명으로 25%에 해당한다. 지난해 일본 여행 보이콧으로 여객 수요가 크게 위축됐는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까지 덮쳐 국제선 여객기 90%가 멈춰 서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을 제외하면 이 수치는 49%로 올라간다. 항공사 직원 2명 중 1명은 쉬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항공의 무급 휴직자는 500명. 나머지는 연차를 쓰는 방식으로 전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쉬는 항공업 종사자는 1만800명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구조 조정은 항공·정유 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자동차·유통·중공업·조선 등 전 업종에서 대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인건비 절감'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올해 초 또다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2016년 극심한 조선업 불황으로 조선 3사(社)에서만 6000명이 구조 조정을 겪었는데,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는커녕 지금도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45세 이상 직원 2600여 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재계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퍼펙트 스톰에 직면한 우리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원유 수입 시 관세(3%)와 수입 부과금(L당 16원)도 1년간 면제해달라고 하는 등 15대 분야 과제 54건을 발표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국내엔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가 너무 많아 국내 기업 경쟁력이 외국 기업보다 떨어진다"며 "정부가 정책 기조를 '기업 발목 잡기'에서 '기업 살려주기'로 확 바꿔 기초체력을 회복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 회장도 "우리 자동차 기업도 500만대 생산 공장 중 60만대만 정상 생산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중소 협력업체의 줄도산과 산업 생태계 붕괴가 우려된다"며 '재난 대응 특별노동조치법' 제정을 건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