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여론의 공분을 사는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으로 ‘n번방 방지법’ 심사 과정에서 소극적 의견을 냈던 여야 의원들이 즉각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민중당 측은 “직무유기 국회의원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가 (n번방 관련) 청원 내용을 축소해 졸속 처리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앞서 송 의원은 국회 법사위의 ‘n번방 방지법’ 등 법안심사 과정에서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발언 일부 내용만 발췌해 마치 n번방 사건 청원을 인지하지 못했고, 청원 자체를 무시한 것처럼 보도됐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범죄 실행의 착수, 즉 유포 행위를 실행하지 않은 사람에게 딥페이크 영상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하던 중에 나온 발언이었다”며 “영상물을 제작·소지한 것만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법조항을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고 했다. 또 “n번방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되며,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김도읍 의원도 지난 3일 국회 법사위에서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들 수 없다”고 했다가 공분을 샀었다. 김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한지 따져 보고 효과적인 방안으로 처리하자는 차원의 의미였다”며 “다른 청원 요구사항은 해당 상임위에 회부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중당 측은 이날 송 의원과 김 의원, 통합당 정점식 의원 등을 ‘n번방 2차 가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민중당 손솔 청년 비례대표 후보는 보도자료에서 “n번방 방지법에 대해법사위가 졸속으로 논의를 진행한 것뿐만 아니라 일부 위원들이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나’(민주당 송기헌), ‘자기 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통합당 정점식),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드냐’(통합당 김도읍) 등 2차 가해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들을 직무유기 혐의, 피해자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야 정치권은 n번방 사건 대응에 전력을 쏟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민심이 크게 흔들릴 것을 우려, 각 정당은 물론 선거 후보자 개인까지 나서서 각종 대책을 내놓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23일 당 회의에서 “n번방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국민의 심판 철퇴를 내려야 한다”며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공직자 회원 명단 공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가담한 모든 사람에 대한 신원 공개도 불가피하다”며 “정부는 가장 혹독한 처벌과 광범위한 신상 공개로 음란 범죄에 단호하고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도 “n번방 사건은 피해를 입은 여성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한 극악무도한 범죄”라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와 가족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하는 매우 중대한 반사회적 범죄”라고 했다.
이 원내대표는 “국회도 ‘n번방 재발방지 3법’을 20대 국회가 종료되는 5월 전까지 추진해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겠다”고 했다. 앞서 23일 민주당 여성 의원 10여명은 ‘n번방 사건 재발방지 3법’을 발의하고 “20대 국회 내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했었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24일 페이스북에 “n번방은 단순한 일탈공간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집단이 모여있는 범죄소굴”이라며 “이 엽기적인 사건에 돈을 주고 참여한 회원들도 철저히 수사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과 아동의 안전만큼은 제대로 지켜주자”며 “디지털 성범죄집단을 확실히 소탕하자”고 했다.
김근식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도 이날 라디오에서 “N번방 사건으로 나타난 미성년자 성 착취 논란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히, 통합당에서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입법 보완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N번방 사건 관련자 전원 수사 지시를 한 것에 대해선 “좀 더 차분한 대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성 관련 민감한 사안이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각 대응하는 것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며 “조금 더 차분한 대응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경제, 다른 여타 국정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대통령이) 이 사안만 꼭 집어서 이야기를 하신 건 야당 입장에서 정치적 의도를 항상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선거 앞두고 ‘여심(女心)’ 공략하려는 정당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여성분들이 문제를 제기 했을 때, 즉각 정치인들이 해결방안을 낼 수 있었다면 더 많은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현행법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의당 문을 직접 두드려달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미 낸 성폭력 관련 5개 법안과 국민의당의 공약을 비교하기도 했다.
지역구에서 선거 활동 중인 예비후보들도 “n번방 사태를 직접 해결하겠다”며 나서고 있다. 통합당 홍철호 후보(경기 김포을)는 “n번방 제작·유포자 신상공개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양금희 후보(대구 북구갑)도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을 제정해 강력 처벌하고 다시는 반인륜적 범죄가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