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을 협박해 성(性) 착취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유포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은 지금까지 한국 성범죄의 온상이 된 ‘소라넷’이나 ‘에이브이스누프’와 같은 여러 불법 성인 웹사이트의 방법을 모방했다.

실제 지난해 초 텔레그램에 성 착취 영상을 최초로 유포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N번방’을 운영한 닉네임 ‘갓갓’이라는 자는 회원들에게 종종 ‘소라넷의 계보를 잇겠다’고 홍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스레 운영된 텔레그램 채팅방의 입장 방법은 에이브이스누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블로그를 개설해 알렸다.

지난 19일 구속된 20대 남성 조모씨는 N번방이 성행하자, 범죄 방식을 모방해 지난해 중순부터 ‘박사방’이라는 텔레그램 채팅방을 운영하다 경찰에게 붙잡혔다.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은 소라넷에서 에이브이스누프, N번방에서 이어진 것이다.

2016년 6월 소라넷 운영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17년간 운영해온 웹사이트 폐쇄를 공식 선언했다.

소라넷은 1999년 5월 개설됐다. 초기에는 각종 성인사이트의 평점을 매기는 사이트였지만, 2003년 방문자 수가 점차 늘며 회원 가입 방식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탈바꿈했다. 이때부터 소라넷은 국내 불법 음란물을 공유하는 등 성범죄의 온상이 됐다.

2003년은 광대역 인터네망이 전국에 보급되며 음란물이 온라인에서 우후죽순 공유되기 시작한 때다. 이른바 ‘김본좌 사건’도 이때 시작됐다. 부산에 사는 김모(42)씨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음란물 1만4000개를 웹하드에 공유했다. 당시 한국에 퍼진 음란물의 70% 이상을 혼자서 유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007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소라넷은 ‘김본좌 사건’과 다르다. 단순히 해외에서 제작된 음란물을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전국에서 성행하는 룸살롱, 불법 안마시술소와 같은 성매매 관련 정보가 오갔다.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하거나 길거리나 화장실에서 찍은 몰카를 공유했다. 회원들이 모여 “술 취한 여성을 성폭행하자”는 식의 성범죄 모의가 오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라넷에서 이러한 불법 음란물이 오가자, 정부는 2006년 이 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소라넷 운영진은 미국이나 유럽 등 각지로 서버를 옮겨 웹사이트 주소를 주기적으로 바꿨다. 바뀐 소라넷 주소는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원들에게 공지했다.

소라넷은 2016년 경찰이 미국과 유럽 등 여러 국가 경찰들과 공조해 서버 추적에 나서며 꼬리를 밟혔다. 결국 운영진은 2016년 6월 트위터에 ‘공식 폐쇄’를 선언하며 17년간 이어온 소라넷 운영에 종지부를 찍었다. 경찰 수사 결과 밝혀진 소라넷 운영진은 6명으로, 송모(47)씨와 그 남편이 운영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송씨에게 불법 음란물 배포를 방조한 죄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소라넷의 유산은 어둠 속에서 이어져내렸다. 텔레그램 성 착취 채팅방 운영자들이 소라넷의 방법을 모방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사방 운영자 20대 남성 조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밀스레 운영되는 텔레그램 채팅방 입장 방법을 홍보했다.

소라넷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반인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스폰서(성 상납) 아르바이트 모집’이라는 글을 올리며 피해 여성들을 물색했다.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면 노출 사진을 찍어 보내게 한 뒤 개인정보를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

성 착취 영상을 유포한 텔레그램 운영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 18일 올라와 23일 동의 수 225만을 넘어섰다.

소라넷이 폐쇄되자 2013년 개설됐던 에이브이스눕이라는 불법 성인 웹사이트가 주목받았다. 에이브이스눕은 성인비디오(Adult Video·AV)에 염탐꾼이라는 뜻을 가진 ‘Snoop’의 합성어다. 기존 소라넷 회원들에 의해 ‘제2의 소라넷’이라고 불리며 2017년 회원 수가 121만명에 달했다. 약 100만 명이었던 소라넷 회원 수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 사이트는 2017년 4월 사라지기 전까지 46만 개가 넘는 음란물이 올라왔다. 몰카 영상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 다수였다. 헤어진 전 이성 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을 복수 차원에서 영상으로 찍은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하는 곳이기도 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채팅방은 이 사이트의 수익 구조를 그대로 따라 했다. 유료 회원제로 운영된 에이브이스눕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문화상품권이나 가상화폐를 통해 결제가 이뤄졌다. 짧게 편집된 ‘맛보기 영상’은 무료로 제공하고, 유료 회원은 결제 비용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눠 제공하는 음란물 수위를 조절하는 식이다. 또, 음란물을 직접 찍어 사이트에 올리는 ‘충성 회원’에게는 결제 없이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사방 운영자 조씨 역시 텔레그램 채팅방 입장료를 가상화폐로 받았다. 영상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맛보기' 방과 영상 수위에 따른 1~3단계 방을 운영했다. 입장료는 1단계 방 20만원, 2단계 방 70만원, 3단계 방은 150만원이었다. 운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회원은 ‘직원’이라고 부르며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캐거나, 찾아가서 성폭행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미국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던 에이브이스눕은 2017년 초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같은 해 4월 문을 닫았다. 다음 달인 5월 이 사이트 운영자 안모(37)씨가 경찰에게 붙잡혀 구속됐다. A씨가 3년간 사이트를 운영하며 회원들에게 불법 영상을 제공하는 등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이 17억원. 2018년 5월 대법원은 안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이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라며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