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대홍수를 겪은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까지 닿도록 높은 탑을 쌓으려 했던 ‘바벨탑’의 전설이 나온다.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한 신께서 언어를 갈라놓고 나니,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된 이들이 건축을 마치지 못하고, 마침내 온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바벨탑의 기원이 고대 수메르인들의 신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약 1525~1569)은 그가 이 그림을 그리기 10년 전 로마를 방문했을 때 직접 봤던 고대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바탕으로 상상의 바벨탑을 그려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던 화가 브뤼헐의 눈에 비친 콜로세움은 위대한 건물이기는 하되 당시에는 이미 반쯤 허물어진 상태였다. 로마 제국이 남긴 거대한 폐허는 이교도들의 헛된 욕망과 자부심이 결국은 파탄을 낳는다는 '바벨탑'의 전설에 들어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브뤼헐은 16세기 전반에 종교개혁을 거치며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이 퍼져 나가 라틴어를 모르는 평신도들도 신의 말씀을 직접 이해하게 된 당시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만의 고탑(高塔)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갖고 흩어진 이들이 지금의 세상을 만든 게 아닌가.
화가는 실제로는 3층인 콜로세움을 나선형 비탈을 따라 하늘을 향해 까마득히 치솟은 고층 건물로 변형했지만 아치가 반복되는 외벽과 군데군데 무너져 내부가 드러난 모습은 콜로세움을 그대로 닮았다. 위태롭게 기울어진 채 올라가는 탑은 인간들이 맞이하게 될 재앙과 기회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