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명동 예술극장 앞에 있는 명동교자 1호점. 굳게 닫힌 철문엔 '내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966년 이곳에 문을 연 이 식당은 두 달 전만 해도 '명동칼국수'의 원조를 맛보려는 이들이 1·2층 260석을 꽉 채우고도 매장 밖에 긴 줄을 섰다.
그러나 국내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한 1월 말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주변 직장인 발길이 잦아들더니, '명동 맛집'을 찾아오던 관광객까지 줄어들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열화상 카메라까지 설치했지만, 매출은 3분의 1토막이 났다. 결국 우한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문을 닫기로 했다. 명동교자 관계자는 "IMF·메르스 모두 겪었지만, 매출이 안 나와 문을 닫는 건 개업 54년 만에 처음"이라며 "이런 상황이 한두 달 더 계속되면, 우리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길 건너 Y닭갈비집. 한창 점심때인 낮 12시 30분, 테이블 32개 중 손님은 단 한 테이블에만 있었다. 현자운(36) 사장은 "두 달 전만 해도 하루 손님 100팀을 받았는데, 어제는 6팀뿐이었다"고 했다. 직원 6명 중 5명을 내보냈다. 그는 "높은 임차료를 내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도 가늠이 안 된다"고 했다.
이날 오후 명동 중심 거리엔 그 많던 노점상이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손님 없는 화장품 매장의 직원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분식집 주인은 떡볶이만 뒤적이고 있었다. 텅 빈 명동 거리는 '우한 코로나' 쇼크에 휩쓸린 한국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항공·여행·유통 같은 특정 산업을 넘어 자영업·중소기업들이 지탱해 온 일상적 경제활동이 완전히 멈춰 서고 있다. 한두 달 전까지 멀쩡하던 중심가 맛집과 중소기업들이 매출 폭락으로 '폐업·도산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 쇼크'가 우리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추경 등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어떤 온기도 느낄 수 없다. 지난달 정부가 긴급 편성한 1조4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긴급경영안정자금'에는 한 달간 6만4368건, 3조3625억원 신청이 몰렸다. 실제 대출(9일 기준)은 3066건, 1360억3700만원에 그쳤다. 집행률이 4%에 불과한 것이다.
명동 라면 프랜차이즈 매장 주인은 "정부 지원책을 알아보고 있는데, 각종 서류 심사에만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며 "다 망하고 나서 돈 들어오면 뭐하나"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 중인 김모(45)씨는 "신용보증재단에 대출을 5000만원 신청했지만, 대출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릴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정부의 지원 대책이 '희망 고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카드론과 저축은행, 대부업체 문을 두드린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는 자영업자들이 제2 금융권으로 쏠릴 수 있다"며 "카드론·저축은행 대출 실적이 생기는 순간 정책 자금 지원 대출 문턱 넘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쇼크'는 상권과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서울 삼청동 입구에 있는 '큰기와집'은 TV에 수차례 소개된 맛집이다. 하지만 10일 점심 시간 이 가게 신발장에는 신발 두 켤레만 보였다. 가게 종업원은 "점심 시간에도 한두 테이블이 고작"이라며 "매출은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제로(0)'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삼청동의 한복집·액세서리 가게들은 오후가 되도록 문을 열지 않았고, 점심 시간 한 돈가스집은 12테이블 중 손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 단 1곳이었다. 삼청동에서 어머니 때부터 40년 한식집을 운영해 온 최모씨는 "예전 매출의 20%"라며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 대표 상권인 홍익대 주변도 상황은 비슷하다. 홍대입구역 어울마당 교차로에서 상수동 방향 약 200m 거리 점포 69곳 가운데 11곳은 오후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연 음식점·옷집 등 58곳 가운데 손님이 1명이라도 있는 매장은 5곳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양말 매장을 운영하는 임모(46)씨는 "1월 초만 해도 외국 관광객에 젊은이들이 몰리며 하루 100만원 매출을 올렸다"며 "지금은 하루 10만원을 손에 쥐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종로에서 객실 50개짜리 관광호텔을 운영하던 A(49)씨는 지난 2일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중국·대만·홍콩 관광객 등이 몰려 올해 초까지 객실 점유율은 80%를 기록했다. 작년엔 직원 12명에게 성과급도 줬다. 하지만 2월 객실 점유율은 30%. 3월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예약 전화보다 취소 전화가 4배가량 더 많았다. A씨는 "직원들은 전부 휴직에 들어갔다"며 "지금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는 게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