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를 접촉해 자가 격리 중인 1만4500명을 출국금지한 이유는 '외교관계'였던 것으로 4일 전해졌다.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에는 병역기피자, 조세범 등과 함께 '출국 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를 현저하게 해칠 염려가 있다고 법무부 장관이 인정하는 사람'을 출국금지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자가격리자들이 출국하면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추미애 법무장관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중(對中) 관계 악화를 의식해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에 대해선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그간의 정부 대응과 대비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자가 격리 중인 1만4500여 명에 대해 확진자 접촉 시점부터 14일간 출국을 금지하도록 요청했다. 상당수가 신천지 신도로 확진자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출국금지는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분이어서 출입국관리법과 시행규칙에 그 대상이 명시돼 있다.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거나 벌금을 미납한 사람도 대상이다.

당시 질본이 법무부에 요청한 출국금지 사유는 '외교관계'였다. 법무부는 질본이 요청한 대상자 가운데 이미 출국금지가 돼 있거나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있어 추가 조치가 필요 없는 극소수를 제외한 전원에 대해 출국금지를 했다. 질본이 내세운 '외교관계 저해 우려'에 대해선 따로 심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상자의 출국으로 타국에서 질병 확산 우려가 높아지는 것도 폭넓은 의미의 '외교관계 저해 우려'에 해당한다"며 "병무청이나 국세청 등 타 기관에서 출금을 요청받은 경우에도 별도 심사 없이 처분을 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자국민을 질병의 근원으로 낙인찍는 행위가 외교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 며 "자가 격리 상태를 이유로 사업상 필요한 출국까지 금지한 것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한 법조인은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와 판단 잣대가 다른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국가가 이미 90국이 넘는 상황에서 '외교관계'를 이유로 한 대규모 출금이 부적절하다는 말도 나왔다.

한편, 자가 격리자 8100여 명에게 출국금지 통지서가 등기우편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법무부가 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바람에 집배원들이 대규모로 자가 격리자와 접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