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째 집에 못 들어 갔습니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 암담했습니다."
경북 포항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A(29)씨는 지난달 29일 병원을 그만뒀다. A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어떻게든 사명감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밀려드는 환자에 지칠 대로 지쳤다"며 이렇게 말했다.
포항의료원에선 A씨를 포함해 간호사 16명이 지난달 26~29일 잇따라 사직했다. 지난달 19일 우한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후 약 40일째 계속된 극한 업무 탓이었다. 포항의료원 관계자는 "가능한 한 휴직을 권유했지만 결국 설득하진 못했다"며 "무조건 참으라고만 하기엔 실제 근무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고 말했다. 간호사 16명이 무더기로 그만두기 전 포항의료원엔 의사 21명과 간호사 100명이 있었다. 총 8개 병동 중 현재 가동되는 4개 병동에 확진환자 116명이 입원해 있다.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1인당 확진환자 7~8명을 돌봐야 한다. 돌봐야 하는 환자 숫자는 우한 코로나가 터지기 전과 비슷하지만 진료 강도가 서너 배 이상이다.
◇간호사들, 장례식장 접객실에서 쪽잠
청소 인력이 없어 병실 청소와 쓰레기 처리도 간호사들의 몫이다. 출근 직후 방호복을 입고 소독약으로 병실 바닥을 닦고 침구에 뿌린다. 하루 세 번 환자들에게 식사를 나눠주고 과일, 견과류, 샴푸, 라면, 미용 마스크팩 등 택배도 전달한다. 확진 환자들은 병실에 보호자가 없다. 고위험군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가족이자 간병인이 되어야 한다. '얼음 넣은 찬물 달라' '뜨겁지 않게 미지근한 물 달라' 등 잔심부름까지 한다. 일부 정신질환자도 있다. A씨는 "환자가 보호구를 잡아당기거나, 물어뜯으면 겁이 더럭 난다"고 했다.
보호구를 한 번 착용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미만이다. 10분만 입고 있어도 습기 배출이 안 돼 땀범벅이 된다. 환자들이 밀려올 땐 하루 3~4번 방호복을 입었다 벗는다. 이렇게 꼬박 8시간을 버텨야 한다. 많은 간호사가 집에 가지 못하고 기숙사나 외부 장례식장 접객실에서 잠을 청한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인 경우, 아이를 돌볼 수 없어 자의 반 타의 반 사직하기도 했다.
안동의료원 등 다른 우한 코로나 전담병원에도 사직서 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간호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식 안동의료원장은 "간호사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포항의료원의 대규모 사직 사태가 여러 곳에서 재발할 수 있다"고 했다. 안혜정 포항시 간호사회장은 최근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호소문을 내고 "동료를 도울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들, 몰려드는 환자 돌보다 실신도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대구의 우한 코로나 전담병원인 대구 동산병원도 의료진이 한계 상황에 몰려 있다. 이 병원은 지난달 29일 기존 병상 230개 외에 63개를 추가로 확보했다. 하지만 바로 당일 새 병상이 가득 찼다. 3명의 감염내과 전문의와 1명의 호흡기내과 전문의로 환자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자, 일반 내과는 물론이고 안과와 외과, 산부인과 등 다른 분야 전문의 14명도 환자의 체온을 재고 산소 공급량을 조절하는 데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원 박남희 행정부원장은 1일 전화통화에서 "의료진이 환자들 확진자 번호도 모를 정도로 환자들이 몰려들다보니 업무가 과중한 수준을 넘어 한계를 넘어섰다"며 "며칠 전 감염내과 전문의가 실신했지만 다시 깨어나서 병상에서 차트를 보면서 다른 분야 전문의들에게 지침을 내려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남희 부원장은 "정부는 군사훈련을 연기하더라도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를 현장에 투입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750명의 공중보건의에게 4주간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고 5일 전국 의료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지만, 군의관은 예정대로 8주간의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