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공식 일정으로 발표했던 영국에서의 외교장관 회담이 무산됐다. 영국 외교장관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 내 우한 코로나 확산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뿐이다. 자국을 찾아온 상대 외교장관에게 '개인 사정'을 들어 회담을 취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외교 결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강 장관이 왜 이 시국에 자리를 비우고 한가하게 유럽 출장을 갔다 이런 망신까지 당하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웬만한 국내 사정이 있더라도 외교는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다. 지난 22일 강 장관이 제네바·독일·영국 방문을 위해 출국한 직후 이스라엘 공항에서 한국인들이 입국을 원천 봉쇄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시작으로 모리셔스는 공항에서 한국 신혼부부들 여권을 압수해 임시보호소에 격리했고, 베트남 다낭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이 호텔 숙박을 거부당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전 세계에서 초유의 '코리아 포비아'가 확산되면서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가 43국을 넘어섰다. 이제 미국 대통령 입에서 한국인 입국 제한에 대한 가능성이 언급되는 지경이다. 미국 입국 제한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강 장관은 아나.
지금 우리 외교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외교장관이라면 일정을 취소하고 당장 본부로 달려와 신속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강 장관이 독일·영국 일정을 강행한 이유는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 관심 행사인데 참석 회신이 저조해 외교장관이 직접 독촉하러 갔다는 것이다. 판단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강 장관은 지난해 북핵, 일본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불거질 때 유람선 사고 구조·수색을 지휘한다며 헝가리에 가더니, 일본 경제 보복이 본격화됐을 때는 일주일간 아프리카 출장을 떠났다. 이번에도 있어야 할 곳에 안 있고 엉뚱한 일정을 강행하다 외교 참사로 국격(國格)을 땅에 떨어뜨렸다. 아무리 유명무실한 외교장관이라지만 너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