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뒤통수를 보인 시진핑

조선일보
입력 2020.02.26 03:16

공산당 권력 교체 순탄치 않아… 과거 시진핑도 테러설 등 휩싸여
中 차세대, 톈안먼·실용 경험… '코로나 이후' 변동 주목해야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중국 공산당의 권력 교체는 순탄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1976년 죽고 나서야 권력을 놓았다.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 숙청이 없었더라면 덩샤오핑 복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덩은 1989년 톈안먼 시위 무력 진압을 결심한 직후 상하이에 있던 장쩌민을 후계자로 불러올렸다. 손에 피 묻지 않은 '새 간판'이 필요했다. 그해 공산당 총서기가 된 장도 1997년 덩 사망 이후에 실권자가 됐다. 후진타오는 2002년 총서기에 이어 국가주석에 오르지만 핵심인 군사위 주석은 2004년 물려받는다. 권력이 나오는 '총구(군권)'를 장이 계속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시진핑도 그랬다. 2012년 9월 권력 승계를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실종'된 적이 있었다. 약속했던 힐러리 미 국무장관과 회동도 취소했다.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될 때 보름쯤 종적이 묘연했다. 변고(變故)였다. 당시 베이징에선 '테러설'이 돌았다. 시진핑 집권에 반대한 세력이 덤프트럭으로 시가 탄 차량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해 베이징 정가는 '보시라이 파동'으로 혼란스러웠다. 혁명 원로 보이보의 아들인 보시라이 충칭 서기는 주목받는 차세대 주자였지만 부인의 영국인 사업가 독살과 측근의 미 총영사관 망명 기도가 겹쳐 실각했다. 보시라이가 해임 직후 아버지가 창설한 윈난의 제14집단군으로 피신했더라면 중국 현대사는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시진핑보다 네 살 위인 보시라이는 같이 자란 시를 우습게 봤다고 한다. 그런 보시라이를 공안·정보 총책인 저우융캉과 후진타오 비서실장 링지화,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가 지지했다. 후진타오 경위국(경호실)에 체포된 보시라이를 빼내려고 저우융캉이 공안 병력을 동원한 것이 '쿠데타설'로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시진핑은 집권하자마자 이 '신(新) 4인방' 세력부터 숙청했다.

시진핑은 2017년 4월 미국에서 트럼프를 처음 만날 때 팡펑후이 총참모장을 데리고 갔다. 그런 팡펑후이를 얼마 지나지 않아 해임하더니 장양 군사위 주임과 함께 부패 혐의로 수갑을 채웠다. 장양은 조사 도중 자살했다. 정말 부패가 문제였을까. '황제'로 불리지만 시진핑 독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은 엄존한다. 지금 시진핑은 우한 코로나 사태에서 허둥대고 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가 26년 만에 처음 연기됐다. 경제 때문에 도시 봉쇄를 풀었다가 방역이 걱정되자 다시 묶었다. 우왕좌왕이다. 시가 뒤통수를 보였다.

1953년생인 시진핑이 언제, 어떻게 권력을 넘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음이 60년대생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중국에도 '86세대'가 있다. 문혁 이후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첫 세대이자 개혁·개방 덕분에 서구 사상도 접했다. 한국 '86세대'가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것처럼 톈안먼 시위는 중국의 86~88학번이 이끌었다. 좌파 이념에 빠졌던 한국과 달리 중국 86세대는 자유·민주·실용 가치를 배웠다. 지금 시진핑 독재를 강하게 비판하는 학자·지식인 중에도 86세대가 많다. 투자은행 한넝(漢能)의 천훙 회장처럼 미국에서 얻은 기술과 자금으로 중국 사업에 성공한 경우도 적지 않다. 공산당과 정부의 86세대는 한국처럼 '운동권'에 머무르지 않고 50세가 넘도록 일선 경험을 쌓으며 공부했다. 이들도 공산당 독재와 중화 민족주의는 추종할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숭배와 영구 집권까지 박수를 보낼 세대는 아닐 것으로 기대한다. 양쯔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다. 양쯔강 중심인 우한발 코로나 사태가 풍파를 키우면 시진핑 1인 독재를 덮칠 수 있다. 시진핑만 쳐다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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