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성동구 사근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지상 4층, 지하 2층짜리 상가 건물의 상점 60여개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인적이 없는 상가 입구엔 '임시 휴점'이란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작년 12월 이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고 기존 확진 환자의 접촉자로 잡히지 않았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40번 확진자(77)가 거주하는 아파트다. 상가 소독을 위해 상인들은 스스로 문을 닫았다. 그가 즐겨 찾던 단지 내 노인정 '시니어 하우스'도 폐쇄됐다. 성동구청은 이달 노인정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노인 12명에게 외출 금지 요청을 했다.

성동구청은 이날 40번 확진자의 동선(動線)과 관계없이 어린이집 등 구내 공공시설 494곳을 폐쇄했다. 어린이 88명이 다니는 구립 '왕십리어린이집'에는 아침부터 학부모들 전화가 쏟아졌다. "우리 애 데리러 가겠다"는 전화가 약 70통 걸려왔다. 김명숙 원장은 "근처 성동구청 공무원 가운데 아이를 데려가면서 '사무실에 아이를 앉혀놓겠다'고 말한 사람도 여럿"이라고 했다.

왕십리역도 긴급 방역 - 19일 서울 성동구에서 해외에 다녀온 적이 없고 기존 확진 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77세 남성이 국내 우한 코로나 40번째 확진자로 확인된 가운데, 이날 오후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누구한테 어떻게 감염됐는지 확인되지 않는 '불특정 감염(깜깜이)' 우한 코로나 환자가 7명으로 늘어났다. 1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기존 확진 환자의 접촉자로 잡히지 않아 아직 감염원이 오리무중인 환자가 하루 만에 4명(37·38·40·46번 확진자) 추가됐다. 29~31번 환자의 감염 경로에 대해 중대본은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불특정 감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누가 감염자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공기 전파가 가능한 신종플루 때보다 이번에 '깜깜이' 환자가 40일 더 빨리 나타났다"면서 "사태 초기에 중국이라는 위험 지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지역사회 방역의 빗장이 풀려버렸다"고 말했다.

'깜깜이' 지역사회 감염 4일 만에 7명

세포 뚫고 나온 코로나 사진 첫 공개 - 19일 대한의학회지(JKMS) 최신호에 실린 국내 첫 우한 코로나 환자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 사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활사를 보여준다. ①세포 내에 모여 있는 바이러스 입자 ②세포 밖으로 이동 중인 바이러스 입자 ③세포 밖으로 터져 나온 바이러스 입자.

지난 16일 연달아 확진된 29·30번 확진자 노부부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살지만 종로 지역의 기존 확진자 3명과 특별한 접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도 없었다. 이틀 후에도 방역망 바깥에서 '수퍼 전파자' 31번 확진자(여·61)가 등장해 대구·경북 지역이 혼란에 빠졌다. 이번에는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1명도 없었던 성동구에서 40번 확진자가 등장했다. 18일까지 집계된 확진자 31명의 접촉자로 격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중대본은 또 "이날 추가된 대구·경북 지역 18명 중 15명은 31번 확진자와 관련 있었지만, 3명은 연관성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37·38·46번 확진자는 31번 확진자가 다닌 교회, 병원 등에서 접촉했을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46번 확진자는 31번 확진자가 방문했던 대구 새로난한방병원과 8.2㎞, 신천지교회와 2.4㎞ 떨어진 종합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누가 병을 옮길지 몰라 공포"

40번 확진자가 거주하는 서울 성동구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5일 보건소를 찾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보다 훨씬 더 잘 대응하고 있다"며 대화를 나눴던 곳이다. 그가 18일 고열 등 증세로 진료를 받은 한양대병원은 오전부터 응급실을 폐쇄하고 병원 전체 소독에 들어갔다. 면회객 방문은 전면 금지됐고, 14일 이내 중국 방문 여부·확진 환자 접촉 여부 등을 확인하는 문진표를 작성하지 않으면 병원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민 사이에서는 서로 감염자일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날 오전 70대 할머니 정모씨는 사근동 주택가의 자택 대문 앞에 멈춰 서서 길 가는 이웃들에게 '마스크 좀 쓰고 다니라'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한양대 학생 제모씨는 "40번 확진자가 이미 우리 동네 누군가에게 병을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 무섭다"고 했다. 인근 약국은 오전에 '마스크 대란'을 치렀다. 최근 마스크 판매세가 주춤했는데, 오전부터 다시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약국 관계자는 "이번 주 들어 처음으로 마스크가 품절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