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여 네티즌 '신상털이'에 임미리 셀프 이력 공개… "치열하게 살았다"

입력 2020.02.14 16:44 | 수정 2020.02.14 16:59

親文인사·네티즌, 임미리 교수 신상 파기⋯ 황교익 "임, 한나라당 출신"
임 교수 "번거로운 수고를 더시라고 올린다"며 자기 이력 올려
"1998년 한나라당 제안 받고 출마…얼마 후 '한나라당 부끄럽다' 글 뿌리고 탈당"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고발을 당했던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가 14일 "1998년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 의원에 출마했으나, 얼마 안 있어 '한나라당이 부끄럽다'는 글을 뿌리고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일부 친여 성향 네티즌들이 임 교수 신상털이에 나서자 스스로 자신의 이력을 공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페이스북 캡처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페이스북 캡처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 교수가 1998년 6·4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검색 화면을 캡처해 올렸다. 황씨는 그러면서 "임 교수가 한나라당 출신이다. 한나라당이 한때 진보였다는 주장은 제발 하지 말라"고 했다. 한 네티즌은 친문(親文)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임 교수가 당시 한나라당 성동을지구당 지방자치특별위원장을 맡았다는 선관위 검색 결과를 올리고 "임 교수는 과거 한나라당 출신으로, 지금은 안철수 쪽"이라고 했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내용의 임 교수 칼럼이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한 의도라는 주장이다. 다른 네티즌은 "임 교수는 진보를 표방하는 가짜 입보수"라며 "한나라당, 창조한국당, 안철수 등 민주당만 빼고 모든 당적을 갖고 계신 분"이라고 했다.

이처럼 친문 성향 네티즌들이 임 교수 과거를 파헤치자, 임 교수는 이날 오후 2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상은 했지만 벌써부터 신상이 털리고 있어 번거로운 수고를 더시라고 올린다"며 이력을 스스로 밝혔다. 임 교수는 자신이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4년 서울로 이주했고, 서울여상과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한양대에서 석사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1998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원에 출마했고, 2007년 민주당 손학규 대선후보 경선 캠프와 창조한국당 홍보부단장 등으로 활동했다고 했다.

임 교수는 과거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것에 대해 "대학 졸업 직후부터 지역신문에 있으면서 동네 의원들이 선거 홍보물 제작 일을 맡아 하다 1998년 제 회사를 차렸고, 그 과정에서 출마 제안을 받았다"며 "선거비용을 대준다기에 출마했다"고 썼다. 이어 "탈당은 그 해 말이나 이듬해 초쯤 했다. 서울시 기초단체장 다수가 담배세와 종합토지세의 광역·기초세 교환을 요구했을 때 잘사는 동네 한나라당 기초단체장이 반대했다"며 "한나라당 소속 의원실마다 '한나라당이 부끄럽다'는 제목의 글을 뿌린 뒤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했다.

황교익씨 페이스북 캡처
황교익씨 페이스북 캡처
임 교수는 2007년 정당 활동에 대해선 "대선을 경험해보고 싶었다"며 "아는 분이 계시던 손학규 캠프로 갔다. 잠깐 있다가 왕따 당하고 그만 뒀다"고 했다. 창조한국당 경력에 대해서는 "대선이 꼭 하고 싶어서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을 갔고, 여러 일을 했다"며 "2008년 총선 때까지 있었는데 문국현 당대표와 만날 싸웠다. 그렇게 싸우다 총선 끝나고 나왔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임 교수를 고발한 것에 대해 "임 교수는 안철수의 싱크탱크 '내일'의 실행위원 출신으로, 칼럼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2013년 11월 10일 당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발표한 466명의 실행위원에 이름이 올랐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안철수 캠프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을 거다. 박사 과정이었는데 잘 아는 분이 이름을 넣겠다고 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며 "이름만 넣었지 캠프에는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소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을 한 장하성 주중대사가 맡았다.

교수는 "인생 참 복잡다단하게 살았는데, 지금과 비슷한 지향을 가지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며 "2005년 긴급조치 9호 30주년 기념문집을 만들 때 70년대를 산 여러 어른들을 만나고 크게 감명받았다. 80년대 운동권들과 크게 달랐다"고 했다. 또 "다음은 세월호 사건"이라며 "2014년 그날 이후 처음으로 역사 속에 몸을 담갔다고 느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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