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억울한 재판을 받고 장기간 구금된 것에 대해 법원의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진범 논란을 빚은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3)씨에게 재심 담당 재판부가 사과했다. 윤씨는 약 30년 만에 드러난 화성 사건의 범인 이춘재(57)가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으로 계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병찬)는 6일 윤씨의 재심 공판준비기일에서 "이미 검찰은 피고인이 무죄라며 기록을 제출하고 있고, 변호인이 동의한다면 이 자리에서 무죄 선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의 의견을 수용해 증거 조사, 증인 심문 등 본격 재판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재심 대상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주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듬해 범인으로 윤씨를 검거해 기소했다.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항소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윤씨는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석방됐다. 그러나 이춘재의 자백을 계기로 작년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검찰도 이날 "작년 11월 이후 8차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서 과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의 감정서 조작, 수사기관의 불법 감금 등에 의한 허위자백이 확인됐으며 이춘재의 자백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윤씨의 무죄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윤씨의 공동변호인단인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은 "이번 사건은 통상적인 형사 재판과 달리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고 검찰, 변호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협업하는 것"이라며 "8차 사건의 최종적 진실과 결론은 법정에서 밝혀지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씨의 변호인들은 이춘재를 증인으로 요청했으며 가혹행위 혐의를 받고 있는 당시 수사경찰관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해 피고인에게 위로가 되고 이춘재 범행의 피해자나 범인으로 몰렸던 사람 등이 위로를 받고 피해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들은 또 경찰이 이날 송치한 8차 사건과 관련한 서류 및 19권에 달하는 과거 수사기록을 증거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변호인들의 자료 제출 요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호인들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8차 사건 증거물 체모 2점의 압수수색과 감정도 법원에 요청했다.

윤씨는 첫 공판준비기일이 끝난 뒤 "30년 전의 과거를 청산하고 나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법정에 나왔다"며 "재판부의 사과에 공감은 하지만 당시 판사들이 사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재심 진행에 맞춰 이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포함해 이춘재가 저지른 사건 가운데 8차 사건에 대한 수사를 우선 마무리 짓고 따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이춘재에게 살인 등 혐의를, 당시 수사 검사와 경찰 등 8명에게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