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표현의 독창성을 고민하다 언어의 한계를 느껴 때로 신조어를 슬쩍 제시한다. 건축가였던 시인 이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조감도(鳥瞰圖)'에서 점 하나를 빼 '오감도(烏瞰圖)'란 말을 만들었다. 까마귀가 주는 불길한 이미지로 흉흉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개인의 불안을 동시에 묘사했다.
김영랑은 신어 제조의 귀재였다. 그의 시구 중 '제운밤 촛불이 찌르르 녹아버린다'에서 '제운'은 '지치다'의 전라 방언 '제우다'의 활용이다. '제운밤'은 '지친 밤, 한 해의 마지막 밤'으로 풀이된다. 영랑의 시어 중 '가득찰랑'은 '가득하다'와 '찰랑찰랑하다'의 합성어. '시들피니'는 '시들다'와 '피다'의 동사 어간을 결합해 '시들면서도 핀다'란 상반된 뜻을 동시에 묘사한 신조어였다.
1980년대 이후엔 황동규의 '홀로움'이 꼽힌다.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라고 썼다. 시인은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라고 풀이했다. 2000년대 이후엔 김승희가 '그래도(島)'란 신조어를 내놨다. 접속사 '그래도'를 가상의 섬을 가리키는 명사로 바꾸고는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면서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삶의 의지를 노래했다.
지난해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은 김혜순은 시집 '날개 환상통'을 통해 '새하다'라는 신조어를 되풀이했다.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빰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이란 시구에서 '새하다'는 '새가 된다' 또는 '새처럼 날거나 노래한다'는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새 술은 새 부대란 말이 있듯이, 문학인들은 신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신어를 발명한다"며 "그 말 하나하나는 현 세계의 빗장을 열어 신세계의 공기를 새어 들어오게 하는 작은 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