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는 '걸어 다니는 패션 이정표'라 불리는 지드래곤(GD)이 지난해 군에서 전역한 뒤 유행시킨 단어다. 자신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와의 협업 제품인 '피스마이너스원×나이키 AF1 파라-노이즈' 운동화를 전 세계에 내놓으면서 박스 속지에 'JUST DO IT'이라는 나이키 슬로건 대신 우리말로 풀이한 '그냥 해!'를 한글로 표기했다. 팬들은 "전 세계에 한글이 빨리 퍼지겠다" "한국 아티스트란 점을 영리하게 알렸다"며 열광했다. 높은 인기에 나이키는 지난해 11월 말 서울 올림픽공원에 '파라-노이즈 농구코트'를 기증하면서 농구 골대 백보드를 '그냥 해'로 장식했다.

①나이키의 영어 구호 'JUST DO IT'을 '그냥 해'로 바꾼 지드래곤이 나이키가 기증한 농구 골대에 앉아 있다. ②공유·공효진이 나오는 신세계 온라인 배송업체 광고 화면에 넣은 한글 문구 '쓱'. ③코오롱스포츠의 상록수 모양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한 '솟솟'. ④사투리 '천지빼까리'를 내세운 LF 패션몰 광고.

그동안 브랜드 로고나 제품명에 각종 영어 단어나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를 써야 멋지다고 여기던 국내 패션계가 한글에 빠져들고 있다. 한글 조형미를 살려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하거나, 영어 로고를 한글처럼 읽어 젊은 층의 관심을 빠르게 흡수하는 중이다.

◇솟솟상회, 냠(LDF), 아우(AU)

"세련되면서도 쿨한, 약간은 나쁜 남자 이미지 어때요? 늑대 소리 있잖아요. 아우~."

지난해 LF(LG패션)에선 옷 잘 입고 트렌드에 민감한 30대 직원들이 모여 난상 토론을 벌였다. 남성 전용 온라인몰을 1년간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사이트 이름. 'AU(Adviser to U·당신을 위한 조언자)란 의미를 살리면서 귀에 착 붙게 하기 위해 '아우'란 의성어를 더했다.

상록수 모양 로고

1973년 국내에 선보인 코오롱스포츠는 젊은 층에 다가가기 위해 상록수 모양의 그림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한 '솟솟'을 새 로고로 내놨다. '솟아라솟아라'의 약자. 청계산 등산로 초입과 낙원상가 등에 '솟솟' 매장을 열었더니,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장소로 꼽혔다.

한글이 젊은 층에 '눈도장'을 찍은 건 2014년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이 문을 열면서 '에스에스지'가 아닌 '쓱'이라고 읽는 광고로 반향을 얻은 뒤다. 신세계닷컴 관계자는 "한글을 내세우면서 전년 대비 인지도 87% 상승에 매출도 32%나 늘었다"고 밝혔다. 또 롯데면세점(LDF·Lotte Duty Free)은 영어 첫글자를 딴 LDF를 '냠'으로 읽는 게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자 '의리냠' '냠다른 TV' 등 유튜브 콘텐츠를 파생시켰다.

◇금기시하던 '사투리'도 등장

LF(LG패션)는 한술 더 떠 패션계에선 금기어였던 사투리를 TV 광고에 전면 등장시켰다. 지난해 모델 배정남을 기용하면서 '너무 많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이란 뜻의 경상도 방언인 '천지빼까리'를 내세운 것. 기획 단계에서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정작 TV 광고를 타자, 두 달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70만회를 돌파했다.

지난해 30주년을 맞은 삼성물산 빈폴은 한글 로고를 개발했다. 정구호 디자이너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걸 강조했다"고 말했다. 로고 디자인으로 유명한 김기조(붕가붕가레코드 디자이너) 작가와 7개월간 개발했고, 'ㅂ' 'ㅍ'을 체크 패턴에 반영했다. 3월부터는 빈폴 서체를 무료 배포한다. 한글 패션 작업도 자주하는 간호섭 홍익대 교수는 "한글은 자모로 만들 수 있는 글자 수가 1만1172자나 되는 예술적 도구"라며 "다른 문자와 어울려도 한글식으로 읽는 것이 젊은 층에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면서 그 쓰임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