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빈틈 찾아 추진하려는 정부…한·미 엇박자 우려 나와
美 "모든 유엔 회원국, 안보리 결의 이행해야"
美 전문가들도 "한국의 독자 대북협력사업은 시기상조"

미·북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제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 행정부 기류와 달리 북한 개별 관광 허용 등 독자적인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한 이후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달아 미국을 찾은 자리에서다. 한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 행정부에서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는 등 한·미간 엇박자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미국으로 출국한 이 본부장은 방미 기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한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5일(현지시각) 북한 개별 관광과 관련해 "(미국 측과)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안보리 제재에 의해서 그게(개별 관광이)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여러가지 공조 측면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개별 관광을) 자제하고, 또 우리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하지 않은 것)"이라며 "한·미 관계를 잘 유지하고 공조를 잘 유지하면서 어떻게 각 분야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진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의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미국과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기존의 제재를 존중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협의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존에 국제사회가 합의한 제재의 틀을 존중하는 내에서 우리가 여지를 찾아보는 노력"이란 것이다. 그는 "지금 대화의 모멘텀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미가 같이 해야 할 과제는 안정적으로 상황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대화 모멘텀을 살리는 것"이라며 "북·미 대화 쪽은 미국이 노력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저희는 남북관계 개선과 촉진을 통해 북·미 대화를 도와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를 하는 개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이번 방미 때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만나 남북 협력 구상과 북한 개별 관광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전날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한 제재 예외 조치를 요구했다. 강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특정 시점에 따라서는 북·미가 먼저 나갈 수도 있고 또 남북이 먼저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북·미 간 비핵화, 관계 개선 대화가 진전이 안 되는 상황에서 남북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남북 대화가 되면서 관여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는 "많은 나라가 이미 개별 관광을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만 못 가는 게 우리 스스로가 너무 제약한 게 아니냐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의 이런 움직임은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 사업 구상을 밝힌 이후 속도를 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 일대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접경지역 협력, 스포츠 교류 등 5대 남북 협력 사업을 제안했다. 이에 맞춰 외교부 당국자들이 미국을 찾아 대북 제재 예외 조치 허용을 타진하면서 미 행정부와 대북 공조에서 균열이 불거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백악관.

한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 백악관과 국무부에선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에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완전히 이행하는데 전념하고 있다"며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안보리의 모든 관련 결의들을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별 관광 허용 등 제재를 완화하려는 데 대한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의 전문가들도 "한국의 독자 대북협력사업은 시기상조"라며 "미국이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 방안과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한국이 추진하는 협력사업은 한미 동맹·유엔 대북제재 결의와 한국인의 신변안전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라며 "비핵화를 이끄는 노력을 해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스탠튼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북한이 발급하는 비자를 신변안전보장 조치로 받아들이려는 데 대해서도 "비자 발급이 관광객 신변안전보장 조치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오토 웜비어의 부모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비자를 발급받아 북한을 여행하더라도 북한 당국에 체포·구금될 수 있으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